유치원 공개수업 이야기
눈물과 오열의 등원은 그 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주말 내내 즐겁게만 지냈던 아이가 월요일 아침이 되자 배 아프단 소릴 또 했다. 지난번처럼 집에서 쉬면 안 되냐고 묻길래,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엄마는 집에서 일해야 하고 넌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 답했다. 우선 유치원에 가서 또 배가 아프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살살 타이르며 등원 버스를 타러 나갔다. 아이는 매번 왕왕 울며 내 목덜미와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어서 가, 엄마가 집에서 기다릴게 하는 말밖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등원 전쟁은 남들 보기에도 안쓰러운 정도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은 발버둥을 치는 아이를 버스에 싣고 돌아섰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수고 많으시네요.' 라고 했다. 가벼운 인사 정도만 주고 받던 동네 아이 엄마들은 근처에 있는 상담센터와 미술치료 센터를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러는 저런 친구들이 있다며 염려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 어느 날은 등원 버스 선생님이 '어머니 고생 많으시죠' 하며 위로의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가 떼쓰며 등원하는 날이 계속되고 나는 배아프다는 말에 유치원에 안 보낸 그날만을 원망하고 있었다. 남편 눈치가 보이더라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라고 할껄, 그날 점심시간에 얼른 유치원에 데려다 둘껄. 주 5일 등원하는 게 루틴이라면 루틴인데, 돌발상황이 하루 생기는 바람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생각뿐이었다.
유치원 선생님과는 매일같이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등원 버스가 출발하면 돌아 서서 휴대전화를 켜고 알림장 앱을 열었다. 오늘도 울며 불며 등원을 했는데, 일과 중에 특이사항이 있다면 알려주십사 부탁드리는 내용이었다. 며칠간 가끔은 엄마가 보고싶다고 울고, 종종 수업 시간에 넋을 놓고 심드렁한 얼굴로 지낸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활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다같이 하는 활동을 할때면 언제 그랬냐는듯 깔깔 웃는다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함께였다.
꼬박 일주일이 지나고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은 아이와 따로 시간을 갖고 왜 엄마와 떨어지기 무서운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나와 남편 역시 아이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몇 번이고 대화를 시도했는데, 그 이유는 듣지 못했고 그저 무섭다는 표현만 계속해 들었기 때문에 무척 답답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에게는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걸 선생님께 이야기 했다니 어쩐지 서운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아이를 너무 다그친 게 아닌가 스스로를 조금 책망했다. 아이가 선생님께 말하길, 지난달에 있었던 공개수업 이후에 엄마와 떨어지는 게 무서워졌다고 했다.
공개수업은 일 년에 두 번 있는 유치원 행사다. 한달 남짓 발표거리를 준비해 엄마, 아빠를 초대해 보여주는 날이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는데 공개수업 하루 전날 아이는 '유치원에 어른들이 많이 오면 무서워'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모두 친구들 엄마, 아빠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자기 아기를 보느라 널 지켜보는 건 우리 뿐이라고 설명하며 안심시키려 했다.
별 걱정 아닐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아이는 공개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가 아이를 달래보았지만 잠시 참을 뿐, 곧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다른 친구들이 발표하는데 방해가 되는 게 분명해 나는 아이들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둘이 복도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원하지 않으면 발표 안 해도 돼, 들어가고 싶을 때 다시 교실로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서 울면 안 돼. 그러니까 들어갈 준비가 되면 같이 들어가자."
그날 공개수업은 1시간반이었는데 나와 아이는 끝날때까지 복도에 앉아있었다. 아이의 눈물은 그쳤지만 교실에 들어갈 용기는 도무지 생기지 않는듯 했다. 교실에서 나오지 않고 기다리던 남편은 곧 들어오겠거니 하며 다른 아이들 하는 것만 내내 지켜보다가 수업이 모두 끝나고서야 복도로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아이를 달래보던 나는 완전히 질린 상태였다. 아이의 원 생활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날이라 나도 남편도 업무 일정을 조정해 온 것인데 그저 복도에만 앉아 있다 가야 하다니 화가 난 것도 사실이었다. 평소엔 개구쟁이처럼 까불고 설쳐대는 아이가 별안간 낯선 행동을 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공개수업 뒤에는 아이들은 과자 파티를 하고, 학부모는 남은 학기 수업 과정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듣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단호하게 아이를 교실에 남겨두고 나왔다. 아이는 급기야 가지말라고, 엄마랑 같이 집에 가고 싶다고 악을 쓰고 울었다. 마음 약한 남편은 아이의 눈물을 몇 번이나 더 닦아주다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아이를 떼어놓고 나왔다. 우리 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 하는 공개수업도 아닌데 왜저럴까 싶었다. 몇 년간의 기관생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우는 건 잠시뿐, 조금 진정되면 친구들과 신나게 과자 파티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집으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유치원 알림장 어플로 과자를 입에 잔뜩 넣고 활짝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대체 왜 그렇게 운 거야 생각하며 제대로 공개수업을 참관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