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등원 거부가 시작됐다.
그날 아침은 보통날과 다를 게 없었다. 7시 무렵에 세 가족이 모두 일어나 각자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아이 아침밥과 그날 입을 옷, 유치원 가방을 챙기는 동시에 재택근무를 위해 노트북 전원을 켜두었다. 남편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출근 준비를 위해 부리나케 욕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이것저것 오만가지 장난감을 다 꺼내 놀다가 밥 먹어라, 씻고 옷 입어라 하는 내 불호령에 겨우 맞춰 굼뜨게 움직였다. 세 사람 모두 외투를 입고 신발을 신기 위해 현관 앞에 섰는데 별안간 아이가 잔뜩 구겨진 얼굴 표정을 하며 말했다.
"배 아파."
눈이 마주친 나와 남편은 서로의 동공지진을 목격했다. 시계를 보며 얼른 아이의 외투를 벗기고 화장실 변기 위에 앉혔다. 등원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3분남짓이었다. 얼른 볼일 보고 엘리베이터를 태우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남편은 아빠 차 타고 유치원에 데려다준다고 말했다.
등원 버스가 이미 떠났을 시간이 되어서야 아이는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외투를 입는 대신 거실에 있는 소파로 가 배를 움켜쥐고 누웠다. 나는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 아빠 차 타고 유치원에 가라고 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늘 9시 전에 업무를 시작하는데, 8시 반이 훌쩍 지나자 점점 초조해졌다. 남편 역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계속해 아프다 하니 난감한 눈치였다. 아이의 뺨을 타고 여러 개의 눈물 줄기가 흘러내렸다. 난 그걸 보고도 조급한 마음뿐이었다. 남편 출근길에 아이를 태워 보내야 하는데, 저대로 갈 수 있는 걸까 어질어질했다. 아침밥에 과일 후식까지 신나게 먹었으니 심각한 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벽시계와 아이를 번갈아 보던 남편은 급기야 아이에게 유치원 갈 수 있겠냐 물었다. 아이는 지금은 못 간다며 뜨거운 물주머니를 안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9시 직전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남편에게 우선 출근하라고 했다. 재택근무 덕이기도 했고 재택근무 때문이기도 했다. 둘 다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이를 누가 도맡아 돌볼 것인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할 텐데 내가 종일 집에서 일을 하니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더러 이런 돌발상황이 생겨도 비교적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남편은 아이를 잠옷으로 갈아입혀두고 현관을 빠져나갔다. 나는 서둘러 회사 메신저를 로그인했다. 아이는 소파에 누워만 있는데 어쩐지 산만하게 느껴져 머릿속에 일 스위치를 켜기 어려웠다. 눈을 부릅뜨고 그날 할 업무를 적어내려 갔다. 처리할 일은 많지 않았는데 오후에 화상 회의가 하나 있었다. 그래, 점심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놓아야겠다 생각했다.
30분남짓 지났을까, 아이가 심심해요 타령을 시작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한 채로 대꾸했다. 배 아픈 건 어떠냐 물으면 아직 조금 아프다고 했다. 점심밥은 먹을 수 있겠냐 물었더니 달걀찜에 밥을 비벼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어떻게 됐나 하면, 아이는 종일 집에 있었다. 때 되면 챙겨주는 밥과 간식을 먹고 레고블록, 종이접기, 온갖 공룡과 동물 피규어, 자동차 기타 등등 자기 살림살이 전부를 꺼내 실컷 놀았다. 냉장고 문을 열 번쯤 열고 닫았다. 티비를 틀어 이거 봐도 되냐, 저거 봐도 되냐 묻기도 하고 지금 같이 보드게임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계속해 거절만 할 순 없었던 나는 어어 그래 그래 하며, 5분 10분씩 놀아주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기를 반복했다.
화상 회의 시작 전엔 아이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해 두었는데, 정말 한 마디도 말을 안 하고 있는 대신 내 곁을 자꾸 맴돌아 기어이 화면에 출연했다. 그냥 지나가면서 슬쩍 나온 정도가 아니라 내 옆에 서서 물끄러미 화면을 응시한 덕에 그 회의에 참석한 모두와 인사까지 나눴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늘 하던 대로 하지 않은 탓인지ㅡ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두고 종일 혼자 일하는 것ㅡ 내내 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날보다 무척 피곤했다. 6시 가까이 되어 회사 일을 엉거주춤 끝내고 얼른 아이 저녁밥을 준비했다. 아이가 갑자기 밖에 나가 줄넘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줄넘기를 하느라 배가 출렁거리면 또 배가 아플 수 있고, 그랬다가 내일도 유치원에 못 가면 큰일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운 뒤 빨리 육아 퇴근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잘 협조해 주었고, 나는 일하며 아이를 돌보느라 고된 날이었다며 남편에게 투정과 볼멘소리를 모두 한 뒤에야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침대에 누워서는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었다. 내일은 늘 하던 대로 남편은 회사에, 아이는 유치원에 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어제만큼이나 절망적인 하루의 시작을 겪었다. 우물쭈물거리며 등원준비를 한 아이가 등원버스 앞에서 입을 크게 멀리고 소리 내어 울며 엄마와 떨어지기 무섭다고 떼쓰기 시작했다. 버스로 등원한 게 꽉 채운 3년에 가까워 오는데, 여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버스등원 첫날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긴 했지만 광광 운 적은 없었다. 버스가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어서 나는 더 이상 실랑이하기를 포기하고 아이를 짐짝처럼 버스에 밀어 넣었다. 버스 창 너머로 양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우는 아이가 보였다. 나는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버스는 떠났고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혼이 쏙 빠져 커피 한잔 내릴 기운도 없었다. 어서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조용한 집안에 홀로 앉아 있었지만 도무지 일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눈물과 오열이 함께 하는 등원은 그날로 끝이 아녔다. 그게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