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워케이션
우리 회사 사무실은 판교에 있다. 입사 초창기엔 한 달에 한 번쯤 사무실로 출근했다. 업무 처리 때문은 아니고 화상 회의에서만 얼굴을 보는 직원들끼리 팀워크를 다진다는 취지였다. 그때만 해도 대표님과 이사님은 일주일에 4일쯤은 출근했고, 다른 직원들도 업무 특성상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사무실에 모여 일을 했다. 입사할 때쯤 나는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있었고 경력직이라는 걸 앞세워 출근보단 내내 재택근무를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정말 꼭 필요한 날에만 사무실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직원 모두가 출근하는 날엔 작정한 듯 회사 근처의 근사한 식당을 예약해 점심을 먹고 간단한 세미나를 했다. 회사의 현황,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요즘 하는 일은 어떤지 서로 컨디션 체크를 했다. 한 달 사이 신규 입사한 직원이 있으면 자기소개를 했다. 다음 달에 또 새로 온 직원이 있으면 또 자기소개를 했다. 입사하고부터 1년 반쯤을 그렇게 했다. 그 뒤로는 분기에 한 번, 또 그 뒤로는 반년에 한 번씩 전 직원이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씩은 온라인으로 전 직원이 미팅을 진행했기 때문에 일 처리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출퇴근하는 직장을 다녔던 때를 떠올리면 '그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이 제주도로 간다고 했다. 얼마간 제주도에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주소지를 옮겨 제주도민이 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부러운 마음을 담아 '진짜 디지털 노마드네요.'라고 말하고 응원한다고도 했다. 독신인 그는 회사 가까운 곳에서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를 키우며 내 기준 이미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는데, 언젠가 제주도의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며 마침내 실행에 옮긴다고 했다. 제주살이는 한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부러웠다.
코로나 시절엔 내 주변 누구나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아이가 없던 지인 부부는 각자 노트북을 가지고 일주일치 짐을 챙겨 동해안 일주를 한다고 했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 몇 군데를 잡아두고 낮엔 둘이 나란히 앉아 일을 하고 밤엔 해변 산책을 한다고 했다. 어떤 날은 지역의 소문난 카페에 가서 일하기도 하고 점심, 저녁 식사는 수산시장 맛집에 가거나 횟감을 포장해 와 숙소에서 먹는다고 했다. 너무 부러웠다. 어느 날엔 화상 회의 중간에 잠시 사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동료 중 한 명이 태국 여행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지난주 내내 치앙마이에서 일과 여행을 모두 했다는 것이었다. 전혀 몰랐던 나는 무척 놀라웠다. 동남아시아 인터넷 환경이 전 같지 않구나, 싶으면서도 좋겠다 싱글 라이프를 외쳤다. 재택근무 혜택을 잘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번에도 부러웠다. 아주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워케이션 부러워 타령을 해댔더니 이사님이 어디라도 다녀오라고, 회사에서는 워케이션을 권장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어딜 가서 일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 가 일해보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출퇴근해야 하는 남편에게 아이 등하원을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집에서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는 건 아이를 철저히 기관에 위탁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에 간 사이에 집안일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회사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때같은 미취학 아동을 달고 워케이션을 가는 건 내 무덤 파는 꼴이었다. 그래서 재택근무 5년이 넘도록 낯선 곳에 가 일하는 로망은 실현할 수 없었다. 아이가 좀 크면 어떨까. 예전에 청학동, 해병대 캠프가 있었다면 요즘은 영어캠프가 있다던데 애를 그런 데 보내놓고 워케이션 가면 될까. 내겐 정말 꿈의 워케이션이다.
그래도 이렇게만 있을 순 없지, 난 일단 집을 벗어나는 것만으로 워케이션 로망을 대신한다. 어떤 날은 만인의 카페이자 독서실이자 사무실인 스타벅스에서 일한다. 어떤 날은 이른 시간에 문 여는 동네 커피집에 가 두 시간에 한 번씩 음료를 추가주문 하며 노트북을 펴고 앉아있는다. 북카페, 노키즈 카페를 수시로 검색하고 틈만 나면 갈 기회를 노린다. 가끔은 가까이 있는 친정집에 가 일하고 엄마가 차려준 점심밥을 얻어먹고 온다. 집에서 빵이니 음료수니 이것저것 보따리를 챙겨 도서관 열람실에도 가고 맥도날드에 가 감자튀김과 밀크쉐이크를 먹으며 일하기도 한다.
제주도민이 된 대표님은 드물게 육지에 다녀간다. 지난 연말에 전 직원이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송년회가 있었는데, 개 두 마리를 애견호텔에 맡겨두고 하룻밤 묵을 스튜디오를 빌려 지내고 간다고 했다. 한적한 섬에 있다가 육지 한가운데 오는 것은 무척 고된 일 같았다. 몇 시간 송년회를 위해 공항까지 차를 몰고 가 비행기를 타고 또다시 공항철도를 이용해 이렇게 저렇게... 알맞은 때 항공권을 사둬야 하고 숙소도 구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다. 내 집을 제주도로. 제주도가 집이고 어쩌다 한 번 육지에 오는 게 워케이션 같은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