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살이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만 사용한다.”
어릴 적 우연히 들은 속설 때문에 나는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자기 나라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프랑스에 가야지, 불어도 배워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꿈이 되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처음 워킹 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2011년이었다.
외국에서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다니,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도였다. 새내기의 패기로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때, 나의 첫 버킷 리스트를 만들며 제일 먼저 ‘프랑스 워킹 홀리데이’를 적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2014년의 여름, 나는 프랑스 파리에 살았다.
Etape.3 – Bonjour, France!
나는 6월 29일 아침 8시 반, 중국 동방항공을 타고 한국을 떠났다. 돌아올 날짜를 정하지 않아 비행기를 편도로 끊었는데, 상해를 경유하는 동방항공편이 가장 저렴했다.
공항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 아빠, 남자 친구를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이제 정말 혼자다. 혼자서 모든 걸 이겨내야 한다.' 마음을 다잡으며 비행기를 올라탔다.
환승 편의 비행기가 조금 연착되어 예정보다 늦게 샤를 드골 공항에 당도할 수 있었다.
착륙 전 비행기의 창문으로 바라본 프랑스의 하늘은 넓고 푸르렀다. '내가 과연 이곳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공항에 내렸다. 간단히 입국 수속을 마친 뒤 휴대폰 로밍을 켜 당분간 지낼 민박집 사장님께 연락했다. 조금 헤맸지만 눈치껏 짐을 찾고 무사히 픽업을 받을 수 있었다. 나를 본 사장님의 첫마디는 “이민 왔어요?”였다. 수하물로 28인치 캐리어 두 개를 부쳐온 까닭이었다.
민박집으로 가는 길, 주변 풍경이 낯설었지만 아직까지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워홀을 왔다는 나의 말에 바캉스 시즌이라 집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을 들으며 숙소에 도착했다. 간단히 짐을 풀고 하루를 기록하며 그렇게 파리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다음 날 아침 민박집에서 주는 한식으로 배를 채우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Charles de Gaulle Etoile’ 역이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개선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인 건축물이 이렇게 도심 한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니. 관광객들 사이에 끼여 기념사진을 찍고 파리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 그때 그 순간을 기록했다.
그런데 나는 심각한 길치다. 지도 한 장 들고 나오지 않아 그곳이 샹젤리제 거리라는 것도 모른 채 무작정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 걸었다. 파리의 건물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내 눈엔 예술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멋있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Grand Palais’와 ‘Petit Palais’였다.
두 미술관 뒤로 말로만 듣던 센 강이 보여 걸어가니 반짝반짝 빛나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가 나왔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서 드디어 에펠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른 가까이 가고 싶어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향해 무작정 걸어갔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동생이었다.
받자마자 “왜 이렇게 늦게 받아!”하고 화를 내는 동생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엄마가 여러 번 전화를 했는데 둔감한 내가 진동을 느끼지 못하고 한참 만에야 받은 까닭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는 동생 때문에 금방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의 동생 목소리는 나를 향한 걱정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 그리움이 흠씬 느껴져 지금 생각해도 찡하다. 통화를 마치고 조금 감정을 추스른 뒤 골목길을 따라 쭉 걸어갔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내 눈앞에 에펠탑이 나타났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인 건가?
나는 한참이나 에펠탑을 바라보며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그날 이후 한 달 내내 무슨 일이 있어도 에펠탑을 꼭 보러 갔다.
파리의 랜드마크인 그녀(La tour eiffel)를 보아야 진정으로 ‘내가 프랑스에 있구나!’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7월 초에는 관광이 주목적이었지만 정착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는 집이었다.
민박집에서는 7월 13일까지 총 2주 동안 머무르게 되어 있었는데, 그전에 집을 구해야 했다. ‘프랑스 존’이라는 프랑스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매일 집을 알아보았지만 민박집 사장님 말씀대로 바캉스 기간 동안만 짧게 빌려주는 방 밖에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우선 8월 말까지 만이라도 지낼 원룸 주인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사이트에 접속해 ‘조건부 하숙 제공’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거동이 불편한 75세 할머니를 돕는 일. 하루 세 번 간호사가 오는 시간에 물을 떠다 주고 몸을 잡아주는 일. 숙식제공. 월 300유로’
집값 비싼 파리에서 월 300유로에 밥까지 준다고? 할머니를 돕는 일은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아 곧바로 메일을 보냈다.
그리하여 일요일 오후 1시에는 단기 집주인, 4시에는 하숙집주인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혹시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한 채 집을 보러 갔다. 다행히 원룸 주인 언니도,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도 좋은 분이셔서 원만히 계약을 체결하고 민박집에서의 남은 일주일은 편히 지냈다. 생각보다 일찍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 여기며.
(3)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