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ne Chance! 프랑스 워킹 홀리데이 (3)

에필로그

by Anna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만 사용한다.”

어릴 적 우연히 들은 속설 때문에 나는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자기 나라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프랑스에 가야지, 불어도 배워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꿈이 되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처음 워킹 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2011년이었다.

외국에서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다니,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도였다. 새내기의 패기로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때, 나의 첫 버킷 리스트를 만들며 제일 먼저 ‘프랑스 워킹 홀리데이’를 적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2014년의 여름, 나는 프랑스 파리에 살았다.





Etape.4 – Il n’y a chance qui ne rechange. (변하지 않는 운은 없다 = 인생사 새옹지마)


8월부터 하숙집에 들어가기로 해서 7월 말까지는 단기로 구한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했던 자취를 프랑스 파리에서 하게 되다니! 혼자 장을 보고, 밥을 해 먹고, 청소를 하는 것까지 다 즐거웠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고요한 집 안에서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번개를 했다. 유럽 여행 카페에 번개 글을 올려 파리에 여행 온 사람들을 만났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다들 갈 곳이 정해져 있는 여행객들이라 만남 뒤에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즈음 하숙집으로 이사를 했다.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는 불어 박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에서 40년을 넘게 살아온 분이셨다. 여러모로 배울 것이 많은 분이다. 몸이 아프신 할머니는 아예 거동을 못 하셔서 침대에만 누워계신다. 하루 세 번 찾아오는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의 기저귀를 가는 시간에 내가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하면 되는 거였다. 큰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던 경험이 있어 환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나에겐 쉬운 일이었다.


하숙집엔 음식을 담당해주는 분도 계셨다. 하루 세끼 다양하고 맛있는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 덕에 하숙집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헐렁했던 바지가 작아질 만큼 한국에서보다 잘 먹고살았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니, 처음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자 파리에서의 삶도 별다를 게 없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에펠탑을 보러 걸어갈 수 있고, 아침마다 Invalides 주변을 걷고 뛰며 운동을 할 수 있고, 금요일 저녁마다 루브르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감격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가을로 접어들어 흐리고 쌀쌀해진 날씨도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그러던 중 내가 하숙하는 방에 살았던 언니가 우편물을 찾으러 집에 왔다.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최근의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언어 교환의 목적으로 프랑스인 친구들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새로운 만남은 항상 즐거웠지만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나는 이곳에서 ‘소속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학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니 학원이나 학교는 다닐 리 없었고, 돈을 벌지 않아도 편히 살 수 있는 집이 있어 일자리도 급하지 않았다. 무교라 종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던 것이다. 그렇게 내 상황을 직시하게 되니 더욱 힘들었다.



Etape.5 – Merci beaucoup!


철저히 ‘혼자’라는 그 깨달음은 곧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한 번도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지금 같은 시간이 언제 또 찾아올까 싶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현재 나의 삶에 큰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이곳으로 오길 다짐했던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파리에 와 도전의식을 불태웠던 그때를. 운이 좋아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서 처음 가진 목표도 쉽게 이룰 수 있는 상황이 온 지금.


나에겐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나의 생활을 기록하고, 영상에 담고, 사진을 찍어, 나만의 파리 백과사전을 만들자.'

이름하여 'P. à. P(Pej à Paris) projets'다.


새 목표를 가지니 다시 삶이 활기를 되찾았다. 때마침 내년(2015년) 2월 17일 엄마와 동생이 나를 보러 파리에 놀러 온다는 소식을 들어 더욱 설렜다. 엄마는 직장 때문에 일주일 뒤 먼저 귀국하고, 2주간 동생과 함께 프랑스 주변 국가를 여행하기로 했다. 동생의 귀국 후엔 혼자서 더 많은 곳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니 아르바이트에 대한 동기부여도 생겼는데, 운 좋게 그다음 주부터 주인 할아버지 지인분께서 운영하시는 한식당에서 홀 서빙을 시작하게 됐다. 점심 파트타임으로 그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월세를 내고도 남았다. 새로운 경험도 하고, 여행 경비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한국에서 워홀을 준비하던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사실 매일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의 의견 충돌, 고된 아르바이트, 비자 서류 준비, 심지어 여행 짐 싸기까지도. 모든 것이 벅차고 힘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내가 한 선택과 나를 위한 결정에 따른 삶의 대가였고, 나는 그것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파리에서 살아간 8개월의 시간과 유럽 여행을 한 1개월 동안 나는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가진 것들과 내 사람들에게 더욱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난관에 부딪혀 조금 주춤거릴 때도 있었지만,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이기도 했다.


때로는 이 시간이 지나면 아마 나는 더 힘들고, 더 고민하고, 더 어려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더 행복하고, 더 배우고, 더 성장하는 내가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기에 내 선택이 후회되지 않고, 내 삶에 항상 감사하고,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나와 내 인생에 Merci, Bonne ch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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