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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이

오래도록 함께 살 줄 알았는데

by 혜솔

입양한 지 한 달쯤 된 어느 날 산으로 놀러 갔던 초롱이가 부상을 당하고 사흘 만에 돌아왔다

발 한쪽이 납작하게 눌린 채 상처투성이였다.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와 방안에서 쉬게 했다.

절룩거리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상처가 조금은 아물어야 깁스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상처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
밖에서 바람을 쐬면 좋을 것 같아 테라스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초롱이는 나에게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야옹~
초롱이의 그 소리는 늘 아침마다 듣는 소리였기에 내다보지 않았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현관문을 열어 보았지만 조용했다.

미미도 보이지 않는다.
숲에서 놀겠거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초롱아~
미미야~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조금 깊숙이 들어갔나 보다 생각하곤, 곧 오겠지 싶어 기다려 보기로 했다.
순간 약간의 불안한 느낌이 스친다.
지팡이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초롱아~
미미야~

소리쳐 부르며 산비탈을 향해 오를 때였다.
계곡 쪽에서 소리가 났다.
야옹~
바위들을 건너뛰며 내려오는 녀석은 미미였다.
미미가 있으면 초롱이도 있는 게 일상인데 초롱이는 보이지 않았다.
미미를 안고 초롱이를 불러댔다. 반응이 없다.
미미는 혼자서는 산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항상 초롱이가 앞장서야 뒤따라가는 계집애였다.

미미와 함께 초롱이를 부르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아이들과 산을 오르는 것도 일상이다.
나 혼자서 산으로 올라가고 있으면 어느새 따라왔는지 옆에서 또는 앞에서
야옹~ 야옹~ 하며 자기들의 위치를 알려주곤 했다.

그렇게 끝까지 나와 함께 뒷산을 돌고 내려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초롱이는 다람쥐를 좋아한다.

다람쥐를 잡아가지고 내 앞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그런 초롱이는 툭하면 숲으로 들어가 놀곤 했다. 물론 미미도 따라간다.
하지만 이번엔 집 근처 숲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갔나 보다.

그것도 초롱이는 다친 몸을 끌고 절룩거리면서
그런 초롱이를 뒤따라 가다가 미미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내려온 건지도 모른다.
초롱이는 잘 뛰지도 못했을 텐데 불편한 다리를 끌고 어디까지 갔을까
미미는 왜 빨리 따라가지 않고 뒤 쳐져가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려온 걸까.

혹시 미미도 초롱이를 찾아 나섰던 걸까?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저 답답하다.
내가 이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들, 그저 내 짐작으로만 느끼고 상상하는 것들,
그런 면이 답답하다.

아침마다 산을 향해 초롱이를 불러보고 해지기 전 또 한 번 불러본다.
벌써 산으로 올라간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소식이 없다.

고양이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으면 꼭 보복을 하러 나간다고 했던가.

산짐승과 어린 초롱이가 붙었다면.... 아, 상상하기도 싫었다.

초롱이의 행방이 묘연한 채 가을이 지나갔다.


포도밭, 사과밭이 앙상하다.

앞 산에 낙엽송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하늘이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파랗다.

공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포도밭 고랑으로 향하고 있었다.

떨어져 쌓인 포도나무잎들이 바사삭 소리를 내었지만 푹신하다.

포도밭을 지나 도랑을 건너려다 무엇을 본 것 같다.

뒤돌아서 조심스레 발아래를 보니 쌓인 나뭇잎 사이로 삐져나온 짐승의 털이 보인다.

나뭇가지를 줏어들고 낙엽을 들추어 보니 아,

어린 고양이의 바싹 마른 몸체가 낙엽처럼 흙속에 박혀 있는 게 아닌가.

형체는 알아볼 수 없으나 초롱이의 털빛이었다.

황금빛 낙엽송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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