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가기 싫다는 손자를 웃게 만든 한마디

3월 입학의 계절... 낯선 세계 앞에 선 아이를 바꾼 기대감과 풍경들

by 혜솔

진눈깨비는 아침이 되자 금세 녹아버렸다. 그런데 손자 로리를 태우고 유치원으로 가는 길, 창밖 풍경은 달랐다. 숲과 논밭이 있는 유치원 근처에는 밤새 내린 눈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들판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 그 풍경을 바라보던 로리가 말했다.


"할머니, 여기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어. 로리 유치원은 멋진 곳이야."


조금 전까지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울던 아이였다. 현관을 나설 때만 해도 울먹였고, 차에 오를 때도 입이 잔뜩 나와 있었다. 그런데 눈 덮인 풍경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바꿔 놓았다. 로리는 요즘 유치원 적응 중이다.


변화의 시간


삼월이 시작된 뒤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작은 가방을 메고 현관 앞에 서면 금세 눈물이 고인다. 어른에게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지만, 아이에게는 아직 낯선 세계인 모양이다.

처음 가는 공간, 처음 만나는 친구들, 처음 따라야 하는 시간표. 집에서는 늘 곁에 있던 가족이 보이지 않고, 규칙을 배워야 한다. 어른은 그 일을 성장이라고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익숙한 세계에서 한 걸음 밀려나는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침마다 아이를 달래서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삼월은 어른에게도 분주한 달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큰 변화의 시간이다. 겨울의 품 안에 있던 아이가 바깥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달. 집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유치원이라는 조금 더 큰 세계로 건너가는 달. 그래서 삼월의 아이들은 아침마다 울고, 망설이고, 뒤돌아본다. 유치원과 학교 앞에서 가방을 메고 서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 조그만 등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또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인다. 어른들이 긴 설명으로 설득하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은 어떤 작은 계기로 바뀌기도 한다. 재미있는 장난감 때문도 아니고, 거창한 약속 때문도 아니다. 햇살 한 조각, 꽃 한 송이, 친구의 웃음, 창밖 풍경 같은 것이 아이의 마음을 먼저 건드리는 것이다. 이날 아침, 손자 로리에게는 창밖의 풍경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로리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다.


"봄이 되면 유치원 농장에 감자도 심고 씨앗도 뿌린대. 로리네 유치원엔 아주 커다란 텃밭도 있다더라."


로리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 조금 전까지 울음을 참느라 굳어 있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유치원은 더 이상 억지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눈이 남아 있고 감자를 심고 씨앗을 뿌리는 멋진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로리는 지난해, 텃밭에서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아이가 처음 사회를 만나는 순간


아마도 삼월의 아이들 각자에게도 그런 장면이 하나 쯤 있을 것이다. 교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일 수도 있고, 운동장 끝에 피어 있는 노란꽃일 수도 있다. 처음 말을 건네 준 친구의 웃음일 수도 있고, 선생님이 내민 따뜻한 손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그런 작은 장면 하나를 붙잡고 낯선 하루를 견뎌내며 조금씩 자라난다.


이날 아침 로리는 울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유치원 쪽으로 걸어갔다. 마중 나온 선생님께 안기며 말했다.


"저기 눈이 하얗게 덮여 있어요. 우리 유치원은 정말 멋진 곳이에요."


아이가 처음 사회를 만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온다. 교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스로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어른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은 그렇게 조금씩 세상과 친해진다. 어쩌면 그 시작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오늘 로리가 만난 하얀 눈 같은 풍경 하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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