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전하는 UAE의 세계

덕수궁 돌담길 옆에서 만난 UAE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

by 혜솔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지난 일요일,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으로 들어섰다. 몇 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내 눈길을 끈 건 하나였다. 전시 제목 <근접한 세계(PROXIMITIES)>. 서울시립미술관과 아부다비음악예술재단(ADMAF)이 함께 연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으로, 40명이 넘는 아랍에미리트(아래 UAE) 기반 작가들을 소개한다. 미술관은 이 전시를 2025년 아부다비에서 열린 한국 뉴미디어 작가전의 후속 교류 프로그램으로 설명한다.



IE003593575_STD.jpg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 신혜솔

최근 중동 하면, 우리는 먼저 전쟁 뉴스를 떠올린다. 화면은 늘 급박하고, 현지의 지도는 자주 붉고 검은 연기로 가득한 장면들이다. 이 전시는 관련 지역의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폭격의 이미지보다 도시가 자라나는 방식, 노동이 공간에 남기는 흔적,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감각, 집과 기억의 사적인 결이 더 많이 놓여 있었다. 이 전시는 '일상의 상상화',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도', '양서류적 상호성' 같은 서로 다른 만남의 방식을 통해 아랍에미리트 동시대 미술을 읽게 한다. 세 개의 섹션 <회전의 장소>,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 <그것, 양서류>으로 구성 되어 있다.



도시의 좌표


전시장 안에서 가장 오래 발길이 머문 작품 중 하나는 모하메드 카짐의 <창 2003-2005>이었다. 같은 창문, 같은 자리, 같은 시선으로 찍은 이미지들이 시간의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환하게 트여 있던 하늘이 점차 건물들에 가려지고, 마침내 창 밖의 시야는 도시의 건물로 가득 채워진다. 이 작업은 한 아파트 창문에서 본 풍경을 2년에 걸쳐 반복 촬영한 프로젝트이며,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가려가는 과정을 통해 UAE의 도시 개발이 시간·노동·공간 점유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바꾸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개발을 거대한 담론으로 먼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창밖 풍경이 조금씩 바뀌는 속도로 도시의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나는 그 사진들 앞에서 '도시가 성장한다'는 말을 다른 식으로 읽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성장은 전망이 넓어지는 일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던 하늘이 사라지는 일일 수 있다.

도시의 진보는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만 체감되지 않는다. 작품 옆에 남은 좌표와 시간 표시는 그 변화가 추상이 아니라, 실제의 장소와 실제의 시간 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이 해석은 작품의 공식 설명이 말하는 '고정된 시점',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 '소속감과 상실감의 동시적 감각'과 맞닿아 있다.



흔적을 남긴 얼굴


바닥에 설치된 작품 중에는 돌마다 슬리퍼의 형태가 얹힌 작품도 있었다. 발이 사라진 자리에는 신발의 윤곽만 남아 있고, 걷는 몸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이동의 역사와 부재의 감각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걸프 지역의 예술이 자주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이동과 정체성, 그리고 도시와 인간 사이의 거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소박한 형상은 더 오래 남는다.


말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흔적이 아니라, 흔적을 남긴 사람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환기 시키는 듯하다. 전시 전체가 UAE를 "이주, 자연의 풍요, 급격한 도시 변환의 교차 속에서 형성된 국가"로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이런 읽기는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IE003593581_STD.jpg ▲압둘라 알 사아디 <스톤 슬리퍼> ⓒ 신혜솔


전시장 중앙의 거대한 로프 설치 역시 눈을 붙잡았다. 길이 약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로프 설치 작품 <자다엘(타래)>이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흘러내리는 밧줄은 폭포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머리카락 다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머리카락을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 바라본다.


오랜 역사와 급격한 현대화를 동시에 겪은 아랍에미리트 사회처럼, 이 머리카락의 타래 역시 여러 층의 시간을 품고 있다. 작가는 머리카락을 "형태와 상태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언어"로 상상하며 조형화한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선들은 서로 얽히며 바닥으로 퍼지고,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의 흐름이 공간 속에서 물질로 변한 장면처럼 보인다.


IE003593576_STD.jpg ▲아프라 알 다헤리, <자다엘(타래)> ⓒ 신혜솔


자연, 지속적인 깨달음


또 다른 축은 파라 알 카시미의 영상 <생명의 징후>였다.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비디오 게임 형식을 빌려 관람객을 화면 속 세계로 끌어들이고, "강을 찾으라"는 안내를 통해 자연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여정을 은유한다.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관람자에게 말을 거는 서사는 삶이 외부 세계의 시뮬레이션으로 매개될 때 생기는 조용한 단절감을 사유하게 한다.

깨어남이 한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행위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진다. 이 작품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자연'이 더 멀게 느껴졌다. 화면은 화려하고 친절한데,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비현실적이었다. 우리가 자연을 잃는 방식은 파괴만이 아닐지 모른다.


너무 매끈한 이미지, 너무 편리한 대체 경험 속에서도 자연은 멀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상은 중동의 특정 지역성만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사는 우리 자신의 감각에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제의 바람과 물, 흙 대신 그것의 이미지로 하루를 건너고 있는가.



세계를 만나기 위한 또 하나의 세계


전시의 끝, 출구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아이만 제다니의 영상 <사막의 수호자들>은 앞선 작품들이 던진 질문을 한 번 더 조용히 감싸 안는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기생식물인 사막고사리가 있다. 이 식물은 다른 숙주에 침투하고, 그 안에 통합되며 살아남는다. 독립된 개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다.

식물의 삶은 필요와 관점, 이야기의 상호 의존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는 사막의 생물 다양성과 역사, 질서, 관계의 흔적이 함께 저장된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 가까운 곳과 먼 곳, 익숙함과 변화 사이를 오가며 존재한다. 세계도, 예술가도 온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흡수되지도 않는다. 모두는 연결과 적응의 역동 속에서 살아간다.

이 에필로그는 전시를 거창한 결론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변화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기억하며 지속할 것인가를 묻는다.


돌아보면 첫 번째 섹션의 상상적 감각, 두 번째 섹션의 흔들리는 지도와 거리, 세 번째 섹션의 양서류적 존재 방식은 모두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반복하고 있었다. 변화의 흐름을 견디기 위한 상상, 지형의 한계를 넘어 관계를 기록하는 지도, 질서 속에 살되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삶. <근접한 세계>는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세계를 만나기 위한 또 하나의 세계'를 제안한다.

국가 홍보전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지만, 개별 작품으로 들어가면 단순한 낙관으로 봉합 되지 않는다. 도시 개발은 아름답고 불편하며, 자연은 그리움과 시뮬레이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일상은 화려한 외관 속에서도 사적인 상실과 소속의 감각을 함께 품는다. 전시 제목인 '근접한 세계'는 그래서 지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을 얼마나 가까이서 상상할 수 있는가의 문제처럼 다가왔다.


뉴스는 중동을 자주 속보의 언어로 옮긴다. 그러나 예술은 속보가 놓치는 시간을 보여준다. 전쟁의 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에도 매일의 방, 창문, 노동, 신발, 밧줄, 물의 이미지가 있다. 그 평범하고 구체적인 사물들이야말로 한 사회를 이해하는 더 느리고 정확한 입구일지 모른다.


덕수궁 돌담길 옆에서 만난 이 전시는 내게 중동을 "설명된 지역"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의 장소"로 다시 보게 했다. 멀리 있다고만 생각했던 세계가, 사실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질문과 그리 멀지 않았다.


IE003593577_STD.jpg ▲근접한 세계2026년 03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전시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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