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흙냄새

소나기를 피해 들어선 공방

by 혜솔

소나기는 순식간에 도로를 시냇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우산이 소용없을 만큼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도자기 몇 점 진열되어 있는 작은 창가 옆으로 골목이 나 있다. 나도 모르게 그 골목으로 뛰어들었고 다행히 문이 열려 있던 그곳으로 들어섰다. 작업 중이던 젊은 여자가 살짝 놀라며 미소를 짓는다.

"비를 피하려고 들어왔는데 잠시 구경해도 될까요? "

여자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뒤돌아서 문밖을 보니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근처 오보라 공원의 숲에서 푸른 내음이 물줄기를 타고 날아온다.

공방 안엔 갖가지 저그들이 빚어져 있었다. 머그컵들이 사이즈별로 가지런히 진열된 채 채색작업을 기다리고 한편에선 초벌 된 작품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벽면에 열려 있는 커다란 가마 안엔 기물들이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주로 커다란 컵과 주전자 그리고 보울들이다. 이 작업실만의 특이한 문양이나 색채로 마무리되는 듯하면서 유럽의 다른 도자기들과도 비슷한 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가마는 전기로 사용하나요? "

나의 질문에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동양 여자가 느닷없이 뛰어 들어와 이것저것 묻는 것도 그렇고 마치 친숙한 공간의 제 영역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내 모습에 의아한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친절했다. 일본인이냐고 묻기에 당당히 한국인이라고 말은 했지만 한국에 대해 잘은 모르는 표정이었다.

"나도 물레에 흙을 얹어 하나 만들어 봐도 될까요?" 했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곧 퇴근이라는 말을 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들도 꽤 있었다. 우아한 곡선을 타고 흐르는 항아리 모양의 그릇들과 머그잔들이 그러했다.


문득, 달밭에서의 생활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산골집, 텃밭, 허브와 꽃들 그리고 도담 공방에서의 추억들, 흙냄새...

밤늦도록 작업을 하고 달빛에 그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한 잔, 두 잔 하던 술잔이 새벽까지 이어지던 날이 있었다. 그 시간을 함께 해준 도담 선생이 있어 행복했던 날들이다. 그저 열정만으로 돌려대던 물레 위의 흙덩이가 투박한 사발이 되어, 또는 작은 찻잔이 되어 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그곳의 하늘은 빛을 내려 주었고 바람을 보내주었다.

흙으로 빚은 기물들이 불에 구워져 그릇이 되어 내 앞에 놓였을 때의 경이로움이란 새로 태어난 생명을 얻는 기쁨과 다를 바 없다. 손으로 만져지는 흙의 촉감이 그리워져 순간 울컥한다.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폭포수처럼 소리를 내며 흐르던 빗줄기도 가늘어졌다.

나는 친절한 그녀에게 다시 한번 들르겠노라 인사를 하고 공방에서 나왔다. 내가 살았던 산골마을의 공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낯익은 기구들을 들여다보며 잠시 내 마음은 푸름이 청청한 산골로 달려가고 있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