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 내가 가엽단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정리가 잘 안 된다.
내 방도, 회사 사무실도, 그리고 머릿속도 죄다 엉켜있어서 어디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엉켜버린 실타래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얇아져서 결국 한 덩이 뭉치가 되어 먼지 속에 파묻힌 쪽빗에 액세서리로 붙어있는 정도로 꼬여버렸다. 불에나 타지 않으면 나으련만, 쪽빗에 꽂힌 머리카락 뭉치가 굴러다니는 장소는 불구덩이와도 같다.
7시 53분. 집을 나섰다.
눈이 떠져서, 기상이라는 몸부림을 치고 나니, 입으로 꾸역꾸역 카페인으로 하루라는 날을 단위를 시작한다. 마음속에 계속 '하기 싫다.'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 '오늘 또 월요일 훈화말씀을 듣는 날이겠구나.' 하며 한숨과 함께 자동적으로 그렇게 이끌리듯 사무실에 나왔다.
오늘 출근길에는 갑자기 마골피의 '비행소녀'가 떠올랐다. 마골피의 청량한 목소리로 드라마틱하게 반대의 의미로 가득한 가사, '안녕, 기억 안녕'가 나올 때 눈물이 핑 돌았다. 몇 주간 지속되는 눈주위 아토피 피부염으로 온갖 보습제를 덕지덕지 바르며,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다스리고 있지만, 눈동자 주위가 주책맞게 촉촉해졌고, 결국 넘쳐 눈동자를 감싸고 있는 피부 밖으로 삐쭉 새고 말았다. 눈물이 방울처럼 쓰라린 피부 겉면을 타고 내려가는 그 찰나의 쓰라림은 지금처럼 공허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이 마음보다는 덜 아프다.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다.
지구력. Patience 혹은 Tenacity라고 하는 그 끈기. 이 것은 강한 편이다. 아픈 것도 잘 참는다. 어떻게든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피가 나고 살이 찢겨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것에 무뎌지도록 그렇게 스스로를 30년 넘게 단련시켜 왔다. 아파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신세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공부도, 이제는 인생 절반 이상의 해외생활도, 지긋지긋한 새장 같은 회사 생활도 지금까지 정말 잘 버텼다. 버티고 그렇게 버텼다.
어떤 호강을 바라거나, 그렇다고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려는 그런 호기도 없어서, 남한테 신세 지지 말자는 그 신념 하나로 '존버' 하고 있다.
그러다가, 오늘 점심시간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건물로 산책이나 할까 생각하며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초록색 불이 행여나 붉은색으로 빨리 바뀔까 걱정하며 뛰다가 결국 늦어져 멈추고 말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내 앞을 수평선으로 달리는데, 갑자기 블루버드 LIMO 택시 창가에 비춘 나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그런 모습. 마음은 이미 뇌사상태에 있고, 그냥 육체가 땅 위에 억지로 붙어있는 듯한 그런 모습. 생기 따위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냥 자아는 완전히 증발해 버려 더 이상 나 자신을 '자신'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그 순간을 맞닥뜨렸다. 그러자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때 이 모습을 어쩌다가 보게 될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서 더 서글펐다.
나는 왜 이렇게 슬픈 사람인 것인가. 이유 없이 슬프다. 슬픔에 덫에 쌓인 나 자신이 한없이 가여워서 그렇게 표정 없이 차창에 비친 나 자신의 그 모습이 영락없이 고스트. 그 자체였다.
이 이상하리만큼 알 수 없는 우울감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연 정말 이직이 나의 이 모든 힘듦을 극복시킬 수 있을까? 가여움과 몸부림이 정말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을까? 아직은 물음표지만, 정말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그 마음만큼은 오늘 이후 더 커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