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난 몸뚱이

지긋지긋하게 낫지 않는 알레르기 반응

by 안나

거의 한 달째 몸이 아프다.

아토피 피부염을 6살 때부터 앓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먹는 것을 주의하고 있고, 반 강제적으로 채식식단을 해 온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한 번씩 거슬리는 일이 있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신체부위가 바로 피부다.


이번에는 양 눈 주위와 인중 그리고 입술까지 허연 각질은 시시각각 일어나고, 빨갛게 부어오른 혈관부종으로 욱신거린다. 감옥 같은 사무실 위에 떡하니 고정되어 있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인공 바람과 복도의 디퓨저의 향이 피부에 닿는다 싶으면 따가워서 얼굴로 향하는 두 손의 움직임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리고, 2주 전에는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이 12시간이라고 치면 1분 단위로 기침을 했다. 알레르기 천식이 도진 것이다. 평소에도 6시간 이하로 자는데, 그마저도 밤이면 더 심해지는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다. 거의 자지 않았다. 나는 로봇 태권브이가 아니기에 이 모든 질병이 한 번에 폭풍처럼 몰려오면 그나마 건사하게 잘 간수해 온 몸뚱이가 풍비박산이 난다.


지금, 천식 증상은 많이 나아졌는데, 밤마다 심해지는 히스타민 물질 분비로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비빈다. 만지지 않으려고 손끝에 크림을 바르고, 면봉을 이용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 부위에 연고를 바르지만 소용이 없다.


항히스타민 2세대 약을 복용한 덕에 잠자는 시간은 늘었다. 적도의 붉은 해는 공해로 뿌연 자카르타 해 지평선 너머에서 가까스로 대기오염을 뚫고 오전 5시쯤 떠오르는데, 그 희멀건한 태양빛이 레이스 커튼 사이로 들어오면 그 빛의 어루만짐으로 눈을 뜬다. 햇빛의 따뜻한 온기가 잠시나마 밤새 건조해진 얼굴을 달래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오늘은 좀 나아졌을까?"라는 찰나의 기대감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 이내 사라진다. 쌍꺼풀을 모조리 풀어버리는 아토피란 녀석은 양 두 눈의 행색을 볼품없이 만들어버렸다. 쌍꺼풀 주름을 복귀하기 위해 물세수를 한다. 하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두 눈의 부피는 어쩔 수 없다. 못생겨진 얼굴을 보니 속상한 마음이 앞선다.


도대체 나의 이 몸뚱이는 왜 이렇게 성나있는 것일까.


요즘은 흔하다고 하지만 나의 끝도 없는 자가면역질환은 여러모로 내 인생을 힘들게 만들어오고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 된 것도 물론 특질적인 측면이 크긴 하겠지만, 아토피 피부염, 관절염, 갑상선 항진증 등도 한 몫했다. 자가면역(autoimmune)이라는 질환은 면역체계가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그러니깐 몸 상태가 불필요하게 민감하게 작동하는 그런 질환이다.


나는 먹고 나서 피부반응이 일어나는 모든 식품군에 대해 '알레르기'라는 주홍글씨를 남발해 왔다. 이 것이 가장 간단한 인과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고리라서, 사고의 편리성이라는 함정에 빠져 '알레르기'라는 스스로의 족쇄를 온갖 음식에 걸어 잠가 "못먹는 음식"으로 치부했다. 그래서 '까다롭고,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이 낙인이 어렸을 때는 상처와 따돌림으로 힘들었는데, 오히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사유가 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이 정도로 몸이 말을 안들을 때는 안 그래도 뜨거운 온몸이 더 휘발되어 불구덩이 변했으면, 그래서 공기 중에 훨훨 날리는 한 줌의 재처럼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Nietzsche)와 오웰(George Orwell) 역시 몸이 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비판하며 개인의 인간관계도 괴팍하게 지냈던 것일까? 결국 핑계다. 그들의 날카로운 사고와 세상에 대한 통찰력은 현재사회에도 유의미한 측면이 많지만, 그들의 아픈 몸뚱이가 그들의 사고체계에 큰 몫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은 서럽게 울면서 긁다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보고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른다. 바라는 것 없이 무작정 '퇴직' '이직'을 강력히 바라는 이 마음, 심장을 감싸고 이 마음의 피부조직을 죄다 무너뜨리려는 방법으로 긁어서 도려내는 비겁하고 미련한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이 회사를 이토록이나 다니기 싫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딜 가도 문제는 발생할 것이며, 결국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할 텐데. 알 수 없는 불만족과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공허하게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몸뚱이를 성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이 말할 수 없는 간지러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얼굴도 더 이상 붓지 않았으면 좋겠다. 먹는 것도 내가 먹고 싶은 거 가려서 먹겠다고 맹세할 테니 지금처럼 음식이 두려워서 쳐다봐도 간지러울 만큼의 공포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이 성난 마음과 몸뚱이 때문에 비판적인 사고는 유지하되 비관적인 성격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성격은 불필요하게 성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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