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국가인가?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집권 이후, 다양한 의제들이 국제뉴스를 잠식하고 있다.
2025.4.2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포장된 상호관세부과조치 발표를 시작으로 파리기후협약 재탈퇴, 미국제개발처(USAID) 지원 삭감,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명, ICE의 조지아 주 현대자동차 배터리 공장 습격 및 노동자 다수의 무분별적 구치소 구금, 3,500억 미불 전액 현금 지급 압박, 유엔(UN) 총회 다자회의에서의 기가 막힌 연설 등
이 모든 행위에 대해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솔직하게 본성을 보여준다고(mask off)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다만, 어처구니가 없을 뿐. 그러나, 미국이 어찌 되었던 앞장서서 '형님' 노릇을 하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국제질서의 원형(prototype)의 일부를 만드는 데 기여했기 때문에, 다양하게 국제질서의 개념, 미래예측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국제질서라는 개념은 실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로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 사료에 의하면, 보편적 안보 시스템, 서양주도 및 중심의 시스템, 보편적 경제 시스템 그리고 강대국 간의 경쟁 속 서양의 국가들이 이 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방식을 기술하고 있다. 즉, 우리가 뉴스를 통해 흔히 접하는 유엔 안전보장위원회(UNSC)에서의 의사결정 방식, 유엔총회와 각종 국제회의에서 발표 및 채택하는 다양한 결의(resolutions) 그리고 제재(sanctions) 등은 기본적으로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국제사회에서의 합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담론을 만들어낸 국가들이 세계 2차 대전 승전국(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며, 특히 미국이 냉전국가 이후 일류국가이자 대적하기 힘든 초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유럽국가들은 미국에 편승한 - 물론 여타 하위 가치 측면에서는 이견이 적지 않게 노출되곤 하지만 - 가치, 담론, 내러티브를 국제사회의 주류화로 만들었고,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담론의 질서를 만드는 권력자들의 지배적 사고방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세상의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권력자들이 대중의 생활양식과 일종의 상식이라는 것을 지배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 '당연하다'라고 믿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귀족사회, 부르주아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지배층-피지배층 간의 구조가 현대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 즉 국제질서 가운데 보편적 경제 시스템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들이 주류화가 되며, 금융과 무역/물류 시스템을 지배하는 북반구 국가들의 담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정점에는 다름 아닌 미국이 자리한다.
푸코의 주장을 일반 생활양식에 적용하면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간 40시간의 노동기준(보편적인 노동시간의 기준은 무슨 기준으로 어디에서 먼저 시작하게 된 것인가), 점심 이후 커피를 마시는 것, 이 생활양식은 왜 주류화가 된 것이며, coffee break라는 말은 왜 생겨난 것인가. 이에 대해 푸코의 생각을 적용하게 되면 커피라는 기호식품으로 막대한 자본을 쌓게 된 스타벅스나 온갖 커피 체인점들이 일종의 '당연한 생활양식'으로 이 행동을 일반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조금은 난해한 푸코의 이론까지 꺼내게 된 이유는 우리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행위를 결코 '당연'하게 여겨서만은 안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행위, 특히 천조국이라고 불리고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믿는 이 나라의 대통령 말 한마디가 세계 경제의 지표를 좌지우지하고, 세계의 판도를 바꿀 만큼 상당한 힘을 지닌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규칙'을 그들 마음대로 편리하게 깨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대해 자유롭지많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라고 말을 붙이지만, 이것은 일방적인(unilateral) 관세조치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기존 수출입품목에서 거의 무관세로 적용되었던 상품들에 대해서 갑자기 미국의 수입업자들이 세금을 내게 된 셈이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낼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수입업자들이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당연히 시장에서 파는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수입업자들의 구매율이 감소하게 될 것이라는 게 기업의 걱정거리이다. 그러나, 힘의 논리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결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으나 존중하여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먼저 해보아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비위를 맞춰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번 주 주말 셜록현준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이라는 지정학 전문가가 쓴 각자도생의 지정학(Disunited Nations, 2020년 作)이라는 책을 리뷰한 콘텐츠를 시청했다. 골자는 미국 클린턴 前 대통령이 중국의 WTO 가입을 독려하면서, 쓸데없이 중국이라는 새끼 호랑이를 키워 미국에 위협이 대상이 되게 만들었으며, 자유무역질서의 비용을 더 이상이 미국이 부담할 필요가 적기 때문에 (내수시장이 강한 나라가 살아남기 때문이라고 설명), 유럽에는 프랑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다극화된 세상에서 각 지역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매우 다르다. 물론 지리적인 측면이 지정학적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에 있어 바꿀 수 없는 유전/유산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간과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자이한은 프랑스의 인구구조가 좋고 지리적으로도 강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예측하지만, 실제 프랑스의 젊은 인구층의 실업률의 덫에 걸려있고,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프랑스 내 출세 사다리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의 이민자 출신 가정의 젊은 노동인구들이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 및 가정 문화/환경의 차이점 등이 사회부조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프랑스의 평등(égalité)의 나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이 책은 기술적인 측면, 각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자국에 대한 이미지와 헌신 정도, 특성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수시장이 탄탄한 국가들이 물론 수출입에 의존하는 나라보다야 자급자족 측면에서는 나을지 모르지만, 지금 미국 시장은 거의 소비자 중심의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 공장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생산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올릴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중국의 경우도 수요를 고려하지 않는 거듭제곱식의 공급(involution)이 과잉 공급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현재의 성장을 유지하며 중국식 발전 모델 즉 중국식 사회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남반구에서 '모범사례'가 될지 고민하고 있다. 이 모델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생각이 자유로운 것이 당연한 국가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고, 심지어 창의성과 개인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복잡한 현실과 국가들의 이기적인 행태 속에서 더 이상 미련하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선의에 기대서는 안된다. 실제로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는 선의의 탈을 쓴 이기적인 개체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눈치 보며 개인의 이득을 가장 많이 챙기고 나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이 국제질서 요소에 투영할 수 있는지 경쟁해 왔다. 이 경쟁이 과거에는 어느 정도 심적으로 여유가 있던 북반구 국가들이 게임 규칙을 다양한 '가치'로 포장하며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듯 그 틀을 만들어왔지만, 지금은 이 모든 탈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못 살 것으로 예측해 오던 나라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잘살기 시작하고 심지어 그들의 발전을 앞서기 시작했기 때문에 고삐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논리가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지만, 염치 불고하고 어쩔 수 없이 게임의 룰을 자꾸 그들이 누려왔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바꾸고 있다. 그리고 그 선봉에 미국이 있는 것이다.
나는 사회가 계속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가치들도 자꾸만 바뀌는 게임의 룰을 지배하는 국가에 의해 재편성될 것이라 본다. 여유 없는 국제사회는 우리에게 날것의 말과 행동양식을 요구할 것이며, 더 이상 '멋져 보이는' 내러티브와 담론도 힘을 못쓰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정말 미국이 아름다운(美) 국가(國)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미국 내 문제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행위에 대해 웃고 있던 마스크를 집어던 지 채 그들의 '몫'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공격성에 대해 생각해 보야한다.
출처:
Malcolm Chalmers (2019) Which Rules? Why There is NoSingle ‘Rules-Based International System’ / RUSI Occasional Paper
셜록현준 유투브(@Sherlock_HJ) 미국이 없는 세계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