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지겨운 월요일

잔소리의 위력, 오만가지 상상의 시간

by 안나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30분.

상사의 지겨운 잔소리 퍼레이드가 1시간 넘게 이어진다.

각 팀에서 이미 1년 내내 사실상 단어만 다른 똑같은 소리를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줘도, 나의 상사는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한다. 그리고, 상사라는 직위를 뽐내려고 그러는 것인지, 자꾸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 '존재의 이유' 그리고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며 빈정거리는 꾸지람을 일삼는다.


이 말을 수동적으로 듣는 행위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상사는 이상하게 월요일 오전 정기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흥분을 하는 건지, 두서없는 잔소리가 두배로 많아진다. 그리고 일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유의미한 각종 사업에 대해 자기 혼자 이해를 못 하고, 이상한 트집을 잡는다. 왠지 내용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았을 때 상대가 만만하면 트집을 잡기로 작정한 듯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마이크로 한 것까지 코치코치 캐묻는다. 오늘 그 일이 2번이나 2명을 대상으로 일어났는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갑질이라고 생각해서 또 들불처럼 가슴에 화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내 일도 아니니깐 내가 화낼 일은 아닌데도 의도가 빤히 보이는 '괴롭힘'의 모습을 그냥 보고 있는 게 매우 힘들었다.


그러고 나서도 30분 넘게 이어진 '잔' 투 더 '소' 투 더 '리'. 정말 환장할 것 같은 진절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팔꿈치를 책상에 받힌 채 계속 그의 궁시렁 랩소디를 들었다.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 시선을 책상으로 향하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빠진 토끼의 구덩이가 보였다. 그 구덩이를 들어갈까 말까.


"어차피 또 한 30분 넘게 똑같은 소리를 주저리 주저리 하겠지? 그래 들어가 보자!"



그렇게 속이 보이지 않는 까만 터널을 미끄럼틀 타듯 내려가자 여러 가지 상상의 메뉴가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언젠가는 써보자고 생각했던 날것의 연애소설이라든가 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직한 나의 모습 같은 것을 말이다.


날 것의 연애소설. 그 안에는 아직 영글지 못한 생각들이 내재되어 있는데, 마치 AI적 사고를 하는 10대 소녀와 아날로그 감성에 빠진 20대 남자의 사랑이야기, 그들이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그게 과연 감정의 연장선이라는 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을지. 뭐 이런 것들을 생각의 띠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았다. 아니면 좀 천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미 결혼한 여성의 일탈적 관계 같은 것들, 마치 아니 애르노(annie ernaux)의 논쟁적인 소설처럼, 냉전시대 러시아 외교관 유부남을 사랑했던 프랑스 여인의 이야기 같은 그냥 메시지 없는 감정에 호소하는 그런 것들.


내가 가장 처음 접했던 연애소설은 프랑수아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었다. 엄마를 여읜 세실의 이야기. 휴가지에서 만났던 사내와의 첫 연애 그리고 엄마의 친구가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하다 결국 사고로 사망한 후 모든 것이 부질없어져 버린, 그리고 연애의 감정도 완전히 소강된 세실의 성장 이야기가 나의 첫 연애소설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가 달콤하지만은 않은 순간의 달콤함만 느끼는 실은 상당한 고통과 용기가 필요한 행위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착각을 느끼게 하는 연애의 달콤함 그 겉맛 뒤에 숨겨진 뒷맛은 상당히 쓰다는 그런 내용으로 연애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지만, 하. 상상의 시간은 상사의 잔소리 퍼레이드로 자꾸만 줄어든다.


그의 주저리주저리 소리가 내 머리주위를 맴도는 모기소리처럼 앵앵거려서, 더 이상 온전한 상상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노트를 급하게 넘겨 두 번째 상상, 이것은 조금 더 현실적인 그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표를 기다리는 곳에 대해 기대고문을 하고 있지만, 그 고문을 감내하며 상상을 했다. '만약 그곳에 간다면'을 전제로.

그러면, 해야 할 일들 여기에서의 행정처리, 내년의 연말정산, 새로운 조직에 대한 공부, 그리고 내 사무실을 어떻게 정리하고 물건들은 어떻게 처분하지 등등. 이 상상을 하니, 확실히 상상의 잔소리가 덜 거슬렸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는데, 그래도 이곳을 '언젠가는 뜬다'라는 마음이 확고해서 그런지 내가 가장 어울리는 곳에 그리고 기여할 수 있는 곳에 간다는 그 미래는 확실하다는 자기 주문으로 두 번째 상상을 마쳤다.


정말 지겹다. 월요일이.

상사의 도돌이표 같은 말을 듣는 것도, 이 조직의 이기적인 관성을 무기력하게 마주하는 것도, 그리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실체 없는 말들로 몇 시간을 떠들어대는 것도. 이 모든 것이 그냥 힘들다. 그래서 나를 제발 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발버둥을 친다. 매일매일. 그리고 이 발버둥은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30분에 더 심해진다. 이제는 바닥이 닿지 않고, 계속 물이 차오른다. 더 이상이 수위가 올라가면 나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과 감정의 진폭이 너무 큰 내가 여기에 더 있다간 정말 익사하고 말겠단 생각을 머리에서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한 주가 시작되었다. 기분은 잡쳤지만, 그래도 내일은 이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오늘보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라고 주문을 건다. 그래도 월요일은 잔소리를 듣는라 영혼 전체가 털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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