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돈돈돈

듣기 싫은 단어조합

by 안나

나는 '돈돈돈'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피곤하다.


그래서, 잘 보지도 않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혹시 수익이 얼마나 되세요?' '이게 다 얼마야!'와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출연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아니 불쾌하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돈은 필수 수단이다. 돈이 없으면 하루도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지금 하는 이 글쓰기 행위도 다 돈으로 구매한 물건과 인터넷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돈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그리고 자극적으로 뽑아내는 매체의 기사들 '연매출 대박' 등 이런 기사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 매출 자체가 목적인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가 이야기하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아직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라 반지하에 살았다고 했다.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옷가게를 했고,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옷가게와 쌀가게를 동시에 했다. 아빠가 어느 정도 직장에서 고위직이 되자 엄마는 가게를 모두 정리하고 전업주부로 생활했지만, 일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았다.


아빠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가 학교는 고사하고 농사나 지으라고 타박했다고 한다. 그런 아빠는 차디찬 초가집과 촌구석을 벗어나고 싶어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고, 공부를 꽤나 잘했어서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하려고 특별반에 들어가 과외를 받았다고 했다. 전교 1, 2등을 다투던 아빠는 인문계 고등학교 시험을 치르러 갔는데, 시험 1교시가 끝나자마자 매형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상고를 들어갔다고 했다. "녀석아. 너 말고도 동생이 아래로 둘이나 있고, 누나들도 있는데, 상고진학해서 얼른 졸업하고 취직해야지." 이 말에 아빠는 매형 오토바이 뒤에서 소리 없이 울며 집에 왔다고 했다.


그때 이후 아빠는 "내가 언젠가 가정을 꾸리면 우리 자식들은 무엇이든 똑같이 해줄 거고, 특히 교육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가장 최고로 해주겠다고 다짐했다."라고 했다. 아빠는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는데, 대학진학 꿈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나름 고위직으로 잘 나간 적도 있고, 명예퇴직 이후에는 다시 박사학위 공부를 했고,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교수도 했다. 정교수는 아니었지만, 아빠의 강의를 들으러 온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볼 때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만큼 이 친구들에게 나의 경험과 인생 담을 나눠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앞섰다고 했다. 보람과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그 기쁨이 매우 컸던 모양이다. 지금도 아빠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한다. 돈이 얼마가 되었든 '일'을 한다는 기쁨이 큰 것 같다. 그리고 배우는 게 아주 많다고 한다.


나는 배움과 일의 기쁨을 느끼는 부모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시간과 과정을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그 인내를 배웠다. 그리고, 돈은 내가 무엇이든 할 때 오는 대가 그리고 그 대가들이 모여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다시 투자하는 개념이라고 인식한 지 오래다. 그래서 그런지 무엇을 갖고 싶은 물욕은 적다. 옷장과 신발장에 내 물품이 차지하는 공간은 반칸 정도이다. 나는 사람들이 벽면을 가득 채운 신발장과 옷장이 왜 필요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건을 고르는 시간과 보는 시간이 피곤하다. 사람들은 예쁘다고 하는 것들을 보아도 그게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잘 모르겠고, 그들의 의견일치는 물론 공감도 못해주어 '돈'과 관련된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상당히 피곤하다.


단, 하고 싶은 일들은 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발간되어서, 그 책을 구매하여 읽는다든지, 만들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레시피를 찾고, 재료를 산다든지,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한다든지 이러한 것들이다.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우선 걸리적거리는 물체가 있는 것들, 예를 들어 골프나 테니스 이런 것들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남들과 함께 그룹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 즉 달리기 같은 그런 맨몸 운동을 좋아한다. 내가 열거한 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돈이 필요하긴 하다.


그래도, 나는 '돈돈돈'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없으면 말고' 이 마인드가 상수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줄곧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혼자였고, 대학을 다닐 때도 공부의 양을 감당하느라 그리고 그 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하느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시간이 없었다. 놀 시간이 없어서 돈 쓸 시간도 없었다. 버스값 아낀다고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그 길을 매일매일 내 카메라 같은 두 눈에 색인하고 싶어서 5km 되는 길을 매일 걸었다. 어쩔 때는 10km를 걸어 다녔고, 혼자서 걷는 그 시간에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지냈던 그 시간이 지금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된다. 이 모든 습관들은 궁핍한 대학시절에 익힌 것들인데, 굳이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그리고 정말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낭만이었다. 그래서, '없으면 말고'란 심지가 굳게 서서 '돈돈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도 공부를 하지만, 대학원부터는 가능한 한 돈이 적게 들어가는 나라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공부에 들어가는 돈도 크지 않다. 다만, 공부를 하면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활자들과 사랑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돈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이 현대사회에서 다행히 소수라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도 인정한다. 나처럼 돈 쓰는 게 빈도로서 가끔인 사람, 그리고 소비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 다수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상품도 출시되지 않아 혁신은 멈출 것이다. 다만, '돈돈돈'이 뇌리에 박혀있고, 마치 강박처럼 돈에 집착하는 사회, 그리고 가격표 자체가 실제 가치인 것처럼 동일시되는 그런 사회는 너무 가벼워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40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인데, 취업난과 여러 가지 면에서 허무주의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한 소리인지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용기를 내어 그 어떤 것에도 꺾이지 않을 줏대와 소신이 있다면, '돈'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구조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스스로 바뀔 때 결국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돈돈'이 국가의 철학이 되질 않길 바라며, 우리 모두 조금 더 '돈돈돈' 인식에서 해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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