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버티고 기다린다는 것
이직 인터뷰를 한지 이제 정확히 2주가 지났다. 11월 초 중순이 되어야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에 빈틈이 생길 때마다 자꾸 애꿎은 절차를 검색하고, 합격 또는 불합격의 예상 같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 그래서 시간에 틈을 만들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바쁘게 움직이고, 생각도 하려 하는데, 도돌이표처럼 생각의 끝은 항상 what if.
어찌 되었든, 기다리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니,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 끈질기게 기다리자."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니 그 이상으로 다 했고, 내가 그 조직과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지는 그쪽 판단이니, 내 잠재력과 인상 그리고 분위기가 그쪽과 어울린다면 합격할 것이고, 나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을 찾았다면, 그리고 내가 그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불합격일 것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또 이직장소를 알아보고 이 새장 같은 회사를 다니며 입에 풀칠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생은 계속 버티면서 사는 것이니 말이다.
더 이상 소비도, 먹부림 하는 것도 즐겁지 않다. 사실 소비는 원래부터 좋아했던 활동이 아니어서 열외긴 하지만,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이 마음이 가슴속 전체를 습격해 장악한 적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 것은 무기력이상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어서, 해야 하는 일도 손 놓아버리고 미루기 일쑤다. 이런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또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지 않고, 잠을 잘 수도 없고, 책을 읽어도 같은 문장을 10번넘게 읽다가 결국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다. 도대체 아침마다 눈은 왜 떠지고, 자동적으로 회사를 왜 오는 건지. 이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그냥 죄다 '하. 기. 싫. 다.'
그러다 저번주 일요일 저녁, 체육관을 찾았다. 무작정 그곳에서 뛰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뛰자. 숨이 차올라서 죽을 것처럼 한번 뛰어보자. 그럼 좀 달라질까. 그래서, 서태지의 라이브와이어(Live Wire)를 자동재생반복 모드로 맞춰놓고 30여분을 뛰었다.
어떤 꿈도 이젠 잃어버릴 순 없어 내겐 전부였던 결박되어 버린 기억 속에 잊혀져 버린 이 큰 울림을 알리러 난 오늘 경계선을 넘을게. [...] 결국 넌 날 못 다듬어 어떤 탄압이라도 내겐 내 마지막 남은 자부심으로 이 거리를 내 마음껏 걸으려 해
내게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를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고, 이게 내 전부였지만 저 가사처럼 결박되어 버린 기억 속에서 모두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서태지가 말한 대로 경계선을 넘지 못한 채, '이직'이라는 새로운 울타리를 가려고 준비 중이다.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리고 그 포부가 있다면 나도 한번 해보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내 존재가 짐과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 생각이 서서히 음습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터를 잡는 순간, '기다리자. 나 기다리는 거 잘하는 그런 사람이니깐.' 란 생각으로 경계선 언저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두 발을 그 틈 바로 뒤에 올린다.
분명 날 다듬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다듬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사회생활 속에서 나름 줏대있게 모난 돌처럼 굴러다니는 게 편하다. 하지만, 그 '맘대로'의 그 모양 안에서도 조금은 의미 있는 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분출되지 못한 채, 안으로만 수그러든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자부심으로 어찌 되었든 거리를 활보하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을 '이직'이라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날 이 새장에서 꺼내달라고, 이 말도 안 되는 궁색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곳으로 날 보내달라고 울부짖는다.
그 모든 외침은 무언에서 그리고 잔잔하게 일어나지만, 이 것은 기다림이라는 철저한 훈련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이다.
그래서 오늘도 기다린다. 그렇게 계속. 상대방의 결정이 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