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놀이

논다는 것: 유희일까. 쾌락일까. 쉼일까.

by 안나

"우리 언제 한번 얼굴 봐야지."

"우리 언제 놀까?"

그리고, 더 나아가, "이번에 휴가 어디로 가지?"


이 세 마디 모두 '노는 것'과 관련 있는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주 6일제였다.

학교는 토요일에는 오전까지 수업하고 하교했고, 아빠도 토요일에는 오후 4시까지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테헤란로에서 일했던 아빠를 데리러 엄마, 동생 그리고 내가 셋이서 '강남 나들이' 갔던 추억도 떠오른다. 그때는 아빠를 데리러 간다는 그 행위보다는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우리 가족이 거의 토요일마다 들렀던 '코코스(Cocos)'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는 게 즐거웠다. 한참 영어를 배울 때라서 그랬는지, 코코스 식당의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천막이 마치 미국 영화에 나오는 식당이 연상되어서 마냥 기뻤다. 그 천막 안에 있는 건물, 그리고 이스트 냄새가 진동하는 뚱뚱한 도우의 피자, 그리고 대형 콜라를 마시는 그 모든 행위가 마치 아메리칸 키드가 된 기분이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이런 게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전까지 사회와 계약된 일을 한 후 가족들이 모여서 외식하는 것. 즐겁고 들떴던 '놀이' 중 하나였다.


지금은 놀이문화의 종류가 90년대 초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선택권도 많아졌고, 토요일 근무와 학교 수업이 없어지면서, '주말' 그리고 '불금'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그 안에는 음주, 가무, 문화공연 등 저마다 희망하는 대로 노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90년대 초, 스마트 폰 그리고 컴퓨터도 집에 있던 시절이 아니라서 - 나 홀로 집에 맥컬리 컬킨이 광고모델로 등장했던 일체형 컴퓨터의 등장이 상당히 획기적이었던 시절 - 나와 동생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놀이터로 가서 모래성을 쌓거나 뺑뺑이를 타면서 놀았다. 놀이터 모래흙이 레이스 달린 흰 양말에 흠뻑 묻어서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지만, 그때는 땀 뻘뻘 흘리면서 뺑뺑이 타고, 시소랑 그네를 타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렇게 놀던 시절이다.

해 질 녘 노을을 보면서, '나 내일이면 이사 가서 너 못 보는데 너무 슬프다.'라고 했던 어떤 남자애와 난생처음 애틋한 고백을 받아보기도 했던 그 시절. 참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지만 뭐가 그렇게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매주 일요일이면 동생과 함께 합심하여 아빠한테서 리모컨을 빼앗아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는 게 인생 최대의 낙이었다. 잠옷바람으로 동생과 함께 '욕심쟁이 오리아저씨는 정말 못 말려.'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면서, 저 만화를 만든 나라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꿈도 펼쳤다. 그때 한없이 어렸던 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동경하며 '나도 저기에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그런 꿈을 끝도 없이 펼쳤다. 하루 종일 상상하고 잠잘 때도 말똥말똥 눈을 뜨고 '미래를 상상'하며 상상의 그 끝에서 스르르 잠들던 그 시절, 그렇게 놀았던 나는 지금은 놀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긴다.


논다는 것, 그것은 유희인가. 아니면 쉼인가. 아니면 쾌락인가.


대학 때 어울리는 것은 그냥 하지 말자고 마음 접고 대학교 2층 도서관, 호수가 보이는 그곳에 터줏대감처럼 앉아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정말 닥치는 대로 책 보고, 내 등 뒤에 있던 그 많은 도서들을 내 전공과목이 아니더라도 읽었다. 이해가 안 돼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다시 어렸을 때처럼 햇빛이 나부끼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벗 삼아 상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브웨이에서 아르바이트에서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친구 Emer의 초대로 '하우스 파티'라는 것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핼러윈 파티와 클럽을 몇 번 갈 기회가 생겨서 '호기심'으로 영국인들의 '놀이'를 체험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버겁고 어색했다. 모르는 사람이랑 '취기'에 의존해서 평생 절친인 것처럼 떠들면서 레이브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은 참 신기했지만, 이상하게도 이걸 '왜'하는지 모른 체 쾌락을 우선시하는 그 놀이 방식이랑 나랑 맞지 않았다.


그 이후, 그 방식보다는 그냥 혼자서 커피숍 가고 책 읽고, 사람들 구경하고, 공원 산책하며, 어렸을 때 흙장난했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놀았다. 몸을 흔들고 처음 보는 사람과 뒤엉켜 있기보다는 그냥 내가 원래 알고 지내는 친구와 시간 내서 대화하며 걷는 게 나랑 더 맞는 놀이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한 것은 '쾌락적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방식도 모른 체 지냈을 것이란 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자카르타에는 '놀거리'가 제한적이다. 레스토랑, 바, 클럽, 그리고 다양한 실내 스포츠 활동 등. 하지만, 이 것은 누구나 자본이 충분한 자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희이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자본의 격차'와 돈에 따라 계층이 정해지는 이 사회에서 '즐기는 자'와 즐기는 것을 '도와주는 자'들로 극명히 나뉘는데, 나는 워낙에 오지랖퍼여서 마음이 불편하다. 원래 인도네시아에서도 노는 방식이 있을 텐데, 기고만장한 외국인들이 와서 '우리'가 노는 곳과 '그들'이 노는 곳으로 나누고, 또 그것을 이용하는 이 구조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기보다는 우리 생각하는 '휴가' 또는 '바캉스'의 기준에 맞춰서 놀이하는 방식으로 모든 관광지의 구조가 짜여있다. '호텔, 레스토랑, 바, 클럽, 휴양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모든 고리들을 '고용창출'과 '경제발전'으로 포장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들 그리고 가진 국가들이 '놀기 위해서' 그 놀이의 장소를 남반구까지 확장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터전은 일하고 내가 고생하는 곳이니, 이곳을 벗어나 특히 남반구 국가에서 통화의 장난질로 가능한 저렴한 물가로 누리며, 쉬기. 그 쉼을 위해 그곳에서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 사고방식. 스스로 '보상심리'를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하는 생활방식이 보통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나는 몇 달 전부터 그 어떤 놀이도 별로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했던 여행도, 내가 얼마나 가식적인 사람인지, 그리고, 그 문화체험을 위해 내 사고방식이 여기 인도네시아와 유럽, 그리고 북미나 동아시아에서 너무 제각각인 게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 어떤 놀이와 여행도 나에게 위안은 커녕 그저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은 옛날을 회상하며, 유희, 쾌락, 쉼도 아닌 상상의 즐거움과 만족으로 놀았던 그 예전에 내 놀이방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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