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 어리석은 비참함은 얼마나 가식적인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 저번주부터 마치 하늘에 커다란 맨홀이 생긴 것처럼 말도 못 할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 열대성 사이클론 Senyar로 수마트라 지역이 흙탕물로 잠기고 말았고, 필리핀, 베트남, 태국 그리고 스리랑카 전 지역에서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했다.
매일 아침마다 읽는 Jakarta Post, 2025.12.3 신문 지면 1면에 폭우 속에 집을 잃고 부인을 잃어 울고 있는 한 노인의 사진을 보았는데,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마를 부여잡고 간신히 눈물을 훔치며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노인의 모습, 내 머릿속에 크게 쾅 박혔다.
그깟 직업 하나 바꿔보겠다고 온갖 허영 섞인 기대감에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콘크리트로 만든 인위적인 그 공간 속에서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는 나라는 인간. 어제는 5개월간의 기다림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마음 그 끝에 결국 불합격이란 통보를 받자마자 막막하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어찌 보면 이 별것도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하는 화이트칼라의 이기심과 오만함이 가득한 나라는 인간. 웬만해서는 잘 극복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실망감이 인정조차 하기 어려운 패배감으로 진화하여 온몸과 정신을 항복했다. 도무지 일어서기가 힘들다.
차라리 통곡을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한다. 그 정도로 이 직업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런 가식적인 생각들이 머릿속 전체를 휘젓고 있을 때, 신문 1면에 허망항 노인의 눈망울 그리고 순식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위태로움과 망연자실한 그의 애처롭고 가여운 눈가, 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지만 순박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의 깊은 주름이 나에게 이상한 꾸짖음을 주었다.
나 따위, 폭우가 쏟아지는 산사태가 일어나든 관계없이 콘크리트 보호막에서 편리함을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그깟 이직하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찮기 그지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히다니. 사진 속의 노인은 방수는커녕 조금이나마 비에 젖는 그 시간을 지연해 보려고 허름한 비닐로 만든 우비를 온몸을 휘감은 채, 자연의 분노가 집어삼킨 부인 그리고 터전을 잃어버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에 놓여있다.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그보다도 그냥 나 자신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부끄럽다.
세상은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왠지 모르게 15년 전 아빠의 말년 직장생활이 상상되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김낙수 부장은 대졸, 대기업 취직, 25년간 근속, 그리고 임원을 꿈꾸며 눈에 보이는 허세에 자기를 끼워 맞추고 스스로를 성공한 인생이라고 치켜세우다가 결국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속에서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보지만 결국 세차장 창업으로 피동적인 방식이 아닌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속감을 만들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품어주는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가장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나 역시 수많은 김부장 같은 '양' 부장의 딸로 살았고, 대한민국이 정해놓은 안정적인 삶 그리고 양복 입고 서류가방 메고 아침 일찍 그리고 밤늦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그런 자본주의적 대도시의 삶이 당연하고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기에 이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공포감이 밀려온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만약 컴퓨터랑 벗 삼아 매일같이 키보드나 두드리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수마트라 지역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간다면"이란 가정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신문에 등장한 노인이 가여울 뿐이고, 그 내면 안에는 이상한 우월의식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내재되어 있는 나 자신이 역겹기까지 하다. 실제 그의 삶이 훨씬 더 고단할지언정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그 기본을 충실히 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 아닌가.
이상하게 잦아들지 않는 이 패배감 때문에 오늘 하루도 망칠 것이 분명하다. 무엇을 해도 집중력은커녕 패배감과 좌절감 때문에, 내가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상한 어처구니없는 억울함 때문에 오늘도 '낭비'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 패배감과 좌절감조차 나의 짧지만 긴 인생에서 1mm 점 보다도 더 작은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여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날도 돌아보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수마트라의 노인을 단순히 가여워하기보다 그들에게 어떻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일들을 하는 어른이 되어있겠지.
이런 생각으로 조금이나마 하찮은 패배감을 극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