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우울해서 큰 일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났다가 우울했다가 눈물이 난다.
며칠 전 출근하기 전에 집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보고 터벅터벅 공동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 철문을 열고 쓰레기를 수거함에 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자기 연민같이 미련하고 꼴 보기 싫은 일이 없는데, 그냥 틈만 나면 '내가 짠하다.'란 생각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를 사귀고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 '마주 보고 말을 나누는, '대화''의 의미와 고마움을 모른다. 그냥 혼자인 게 가장 편안하고 나다워서 혼자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자꾸만 생각을 한다. 생각에 빠져있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것, 대부분 생각을 하다 보면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디폴드이기 때문에, 염세적이거나 폐쇄적인 생각에 감금되기 일쑤인데, 괜찮다. 잿빛 하늘보다도 까맣고 도시 전체가 잠길 만큼 폭우가 쏟아내려도 이 생각 안에 갇혀 있는 나를 꺼내기가 더 싫다.
자카르타라는 도시 전체가 마치 감옥 같다.
이동수단이 제한되어 내 마음대로 '시간약속'을 맞추기가 힘들다. 이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연할 때도 되었는데, 그래도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 이를테면 '출근시각'같은 사회와의 약속에 '어쩔 수 없이 늦었다.'로 해명하는 것이 싫다.
비가 오면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오는대도, 택시가 잡히지 않고, 기본요금을 평소보다 10배를 더 주고 출근을 해도, 늦는다. 어떨 때는 매일 오는 출근길을 갑자기 폐쇄한다거나, 거대한 야자수가 쓰러져서 그 잔해를 치우느라 안 그래도 혼잡한 도로가 아수라장이 된다.
내 통제 그 능력과 범위 안에 벗어나 있는 일인데도, 이것마저 '내 마음대로 안되어서' 분노하고 우울하다. 결국 그날의 기분은 보기 좋게 잡쳐있고, 억지로 잘 때까지 기분 나쁜 상태를 유지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억지로 웃음을 짓고, '괜찮은 척' 누구의 말, 아니 소리만 들어도 역겹고 구역질이 난다.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은 오히려 낫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굳이 '척'할 필요 없이 그냥 일 이야기만 하면 되니깐. 그럴 때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배운 미소장착이 가능하다. 다만, 그 시간이 45분 이상이 넘어가면 오장육부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내가 아닌 사람을 만나서 상대하는 시간이 30분 이상이면, 물도 마시지 않는다. 온몸이 긴장을 해서 무엇을 해도 체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체할 것'이라고 체면을 걸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의 기분과 몸이 나도 힘들다. 그래서 힘들고 우울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의 감금 속에 나를 구겨 넣는 편이 좋다. 오히려 안도한다. 잡다하고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그 생각의 세포 속에서 나라는 개체는 산산조각이 나있다. 온갖 파편은 가루화되어 손가락으로 집을 수도 없는 그 상태로 부서져있지만, 그게 편하다. 완전히 가루화된 나라는 개체가 오히려 자유롭지 않을까.
억지로 행복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손목을 긋고 고층빌딩에서 떨어질 만큼 용기가 있지도 않다. 다만, 악착같이 못한 나 자신 때문에 고통받을 가족들이 마음에 걸려서 또 운다. 눈물이 날 정도의 힘은 있나 보다.
이 생각들 속에 갇혀있는 내가 언젠가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