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마다 다른 '보통, ' 그리고,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
새해가 밝았다.
190여 개의 국가들은 태양력 또는 Roman calendar라고 하는 달력을 기준으로 '새해'를 계산하는데, 매년 각국의 자정 때 불꽃놀이, 카운트다운, 새해 다짐을 통해 '새해'를 맞이한다.
그러나, 나는 새해맞이를 하지 않은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일 년 내내 우기와 건기라는 기준으로 날씨를 구별하는 자카르타에서는 계절의 개념이 내가 태어난 곳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가 없는 만큼 새해를 맞이할 기분이나 분위기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새해라는 마치 새하얀 도화지 위에 망쳤던 그림을 다시 한번 그린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새해다짐 혹은 New Year Resolutions이라는 개념의 일반화를 설파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작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새해에 국한될 필요 없이 그냥 결심이 서면 그 순간부터 실천에 옮긴다. '새해부터 하자!'는 핑계에 불과하다.
이렇듯 사람마다 '보통'의 기준이 다르다. 보통이란 말은 평균이란 말과는 조금 다른 보편적으로 통하는 그 어떤 개념과 생각인데, 평균과 상식 그리고 여기에 더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기본값도 포함되어 있는 그러한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8년의 인생을 거치면서 '보통'의 기준이 매년 그리고 시기마다 달랐다. 내가 태어난 나라, 국적, 성별, 학력, 자라온 환경, 내가 선택한 곳에서 시작한 삶, 그러면서 부딪혔던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임기응변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모두 혼합되어 지금 생각하는 '보통'의 기준은 20년 전 대학교 입학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며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정도의 품위 유지'이다. 돈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돈이 절댓값은 아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사치'에 대한 취미와 관심은 없고, 기호식품에 대한 소비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지내면서 터득한 절약이 이제는 보통의 기준이 되어 그런 건지 '없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없으면/안되면 말고'의 마인드가 이제는 자연스럽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 엄지손톱의 반월모양보다도 좁은 나의 왜소한 인간관계로 인해 그다지 사회생활 또는 사회성을 자의와 타의에 의해할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체면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지도 않다.
체면과 겉멋은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상대방'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매우 희소한 변수와 같은 개념이며, 오로지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돈이 들어가지 않거나 아니면 소액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취미로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산책과 독서 그리고 사색.
음식 역시, 나는 소금과 후추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불자는 아니지만 오신채를 삼가는 생활을 한다. 자극적인 음식, 양념이 듬뿍 들어간 음식은 보기만 해도 거북한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로 인해 고통받는 세월이 길어서 생긴 또 다른 '보통'의 기준이다. 그래서 남들과 같이 무엇인가를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음식을 나눠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을 비롯한 웬만한 식사시간은 혼자서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천천히 내가 직접 준비한 채소들로 꾸린 음식을 먹고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며 지내는 그 시간이 몇 안 되는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 중 하나다.
그리고 배고픔도 잘 참는 편이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그냥 굶는 것을 택하거나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일주일을 견딘 적이 허다한 나의 10-20대 생활의 내공이라고 해야 하나. 이 역시 나에게는 '보통의 기준'에 들어가는 요소다.
이것이 나에게는 보통이라 그런지, 새해에 들뜸, 다짐, 그리고 기대 같은 것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계획한 것을 계획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그 시기부터 하면 된다란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그런지, '새해'를 기준점으로 삼으며 사람들에게 기대심리를 파는 행위를 보면 동요하지 않는다.
물론, 다양한 보통의 기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보통'이 이런 것이면, 타인의 '보통'도 나는 존중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들뜬 사람들을 보면 공감은 되지 않지만 그럴 수는 있겠다 정도의 이해는 한다. 이미 나에게 세상은 살아가기에 버거워서 그런 것인지 '새해'라는 거짓 희망에 속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전두엽을 장악한다.
이렇게 염세적인 사고로 살아가도, 살아진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내가 아무리 비관적인 인간이라도 나랑 연결되어 있는 핏줄 그리고 내가 선택해서 평생이라는 기간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겠다는 그 책임감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을 슬프게 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제력은 생겨서.
그래서, 나의 보통의 기준으로 오늘도 산다. 새해여서 들뜨진 않지만, 내일이라는 기약이 있어서, 조금은 다행이란 그런 생각으로 그렇게 나의 보통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