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관심
내가 다니는 이 지긋지긋한 이 직장은 모든 1인 1 사무실 공간이다.
2013년 10월 첫 출근을 했을 때는 2인 1실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사무실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때, 1인 1실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였다.
2018년 사무실 이사, 그리고, 몇 년간 3인 1실 체제로 지내다가, 결국 그렇게도 원하던 1인 1실 사무실을 갖게 되었고, 내 사무실 방문 앞에 내 이름 석자도 멋지게 붙일 수 있어서 출세한 것 마냥 매우 기뻤다.
회사에서 '내'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커피머신을 처음으로 들였고, 그다음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초록색과 골드색의 조합이 아름다운 스탠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친구들이 보내준 엽서로 한껏 내 공간을 꾸몄다. 이룰 수 없는 자아를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한껏 누릴 수 있는 이 호사를 그냥 놓치기 아까웠다.
하지만, 내 의자를 등지고 설치된 얇디얇은 벽 너머에는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 4명이 한 공간에 있다. 이 조직에서 그들을 선발할 때의 기준은 인도네시아 명문대 출신, 한국어 구사능력과 영어능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야 했다. 뛰어난 인재들이 뽑고 난 후 그들은 '인도네시아' 출신이어서 나와 여러모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사무실 공간, 월급, 복지혜택 등.
나는 철없이 나의 공간을 얻었다고 그렇게 좋아하며, 아침마다 시끄러운 커피머신을 사용하여 카페인을 추출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들은 4명이 한 공간에서 묵묵하게 일한다.
이렇게 서두가 긴 것은 관심, 정확하게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기나긴 불평등이 누적되어 결국 터져버린 인도네시아의 전국적인 시위, 캄보디아-태국 국경 분쟁과, 태국의 총리 해임, 트럼프의 횡포,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국제질서를 위선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강대국들과 이 개념에 대한 도전.
이 모든 것들의 기원은 죄다 지배-피지배라는 구조와 굴레에서 벗어 나오지 못한 인간의 탐욕 때문이 아닐까.
내가 무엇이 잘나서, 나에게는 1인 1실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내 뒤에 있는 친구들은 그러할 수 없는 것인가. 이 세상은 왜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개념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인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평등과 전쟁들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왜 서양의 언론에서는 가자지구의 상황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전쟁만큼 다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왜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들 학대하는 기관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가. 그리고 왜 노동자에게 '외국인'이라는 불필요한 형용사를 붙여 노동자를 분류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런 개념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 사람들에게 너 vs 나라는 편을 들게 하는 것인가.
도대체 어째서 이 세상은 아직도 끔찍한 경험과 불평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사람들을 가두어놓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지내고 있는 공간이 평화롭다고 해서 이 세상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자카르타만 하더라도, 내가 주로 지내는 곳은 삼엄한 경비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그렇지 있지 않은 곳, 그곳을 여기에선 깜풍(Kampung: 마을/시골)이라고 한다. 그곳으로 가보면, 자기 신체에 맞지 않은 큰 티셔츠를 한벌로 입고 있는 어린아이들이며, 파리가 날리는 좌판에 앉아 비닐봉지에 넣은 과일을 파는 아낙을 줄지어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도 정전 걱정 없는 아파트와 그 아래 Kampung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선풍기조차 비용문제로 사용할 수 없어, 비 오면 홍수와 침수로 고통받고, 찌는듯한 고열의 더위에는 간간히 목을 축이는 물로 하루를 연명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내가 깜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자카르타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대뜸 '거길 왜 가? 위험하게.'라고 하며 이 도시의 한 면을 눈감으라고 강요한다. 그곳이 위험한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위험한 게 아닌가.
이 모든 것을 외면하는 것이 나한테는 조금 힘든 일이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콜록콜록 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대단한 문서작업한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를 보낸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크리넥스 휴지를 사달라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귀찮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이내 집으로 도착하면, 그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내가 느끼는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나의 기준으로 그들이 게으르니까, 나라가 발전이 없는 거다라는 단순한 논리로 이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을 뿐, 그 이상의 생각을 하는 것이 힘들다. 위선적인 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구역질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내 영역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무관심은 권력을 추종하는 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건인데, 무관심이 커지면 결국 지배-피지배라는 그 구조 속에 모두가 갇혀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기에 관심만큼은 마지노선으로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내 주변부터 관심을 갖고,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