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내가 생리를 얼마나 늦게 시작했는지, 생리 주기가 얼마나 처참한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생리불순을 이겨내려다 얼마나 깊고 깊은 암울에 빠졌었는지 나와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생리 자주 안 하는 거 솔직히 편해. 아프지도 않고 귀찮지도 않고 생리대값도 아끼고. 그런데 문제가 두 가지 있는데 그게 너무 커. 대체 언제 생리할지를 몰라서 꼭 여행 갈 때 생리를 시작한다든가 하는 불편함, 나중에 내가 아기 낳고 싶을 때 가질 수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그 두 가지 문제가 내가 몇 년을 고생하면서 생리불순을 이겨내려던 이유야."
실제로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는 다 가봤다. 나는 굉장히 이사를 많이 다닌 편인데, 살았던 동네의 맛집은 몰라도 동네의 산부인과는 다 알고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산부인과에 들어가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이제는 그냥 이비인후과쯤으로 느껴진다. 생리불순으로 산부인과를 찾으면 항상 비슷한 플로우로 검사가 진행된다. 질 초음파를 보고, 의사와 상담을 하고, 생리 유도제 주사를 맞는다. 그렇게 수 번을 찾아다녔는데, 단 한 번도 내 몸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병원에서는 이런 말도 들었다. "그냥 생리가 간혹 오는 게 그게 본인의 생리 주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냥 내 몸이 이상한 거다.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라. 그렇게 들렸다. 다낭성이라든지 근종이라든지 낭종이라든지 뭐 어디가 어떻게 이상하다는 둥 어떤 방향으로 치료를 하자는 둥의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첫 사이클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 나는 크게 낙담했다. 내가 대체 무얼 잘못한 건지 궁금했다. 물론 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나일 것이다. 유튜브와 캐나다 맘카페에서 '불임'에 대해 검색했다. 시험관과 인공수정이 뭔지도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캘거리의 몇 없고도 큰 장점은 거주자들에게 큰 제약 없이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인데, 불임 병원은 헬스케어가 적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파트 중 하나다. 치료비 단위가 만 불 이만 불이었다. 비싸긴 해도 결국 해야 된다면 빨리 검사를 진행하고 싶었다. 나는 남들보다 생리 주기가 최소 두 배는 차이가 난다. 그만큼 기회는 남들의 반도 되지 않는다. 1년에 기회가 적으면 두 번, 많아야 다섯 번이다. 한 번 실패하면 두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다이어트 식이조절이 폭식을 야기하듯, 불투명한 가능성이 간절함을 부추겼다. 한국인 의사를 패밀리닥터로 지정하고 싶었지만 마치 하늘의 별 따기 같아 어쩔 수 없이 동네 가까운 클리닉에서 아무나 골랐다.
6월 29일 슬픔의 고배를 마신 뒤, 6월 30일 생리를 시작했다. 맘카페를 열심히 찾아보니 불임으로 병원을 찾는다면 생리 2-3일 차에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생리 2일 차인 7월 1일, 집 근처 클리닉에 전화했다. 아쉽게도 당일 방문은 불가능하고 다음 날 찾아오라고 했다. 의사를 만나자마자 모든 이야기를 했다. 첫 생리가 얼마나 늦게 시작했는지, 얼마나 불규칙한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떠듬떠듬이지만 전부 말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노트에 영어단어도 정리해두고, 전날 샤워하면서도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엄청나게 연습했다. 캐나다 맘카페에서 보니 캐나다 의사들은 만 35세 미만의 여성/임신 시도 1년 미만인 환자에게는 열심히 집에서 시도해보라며 응원만 해준다는 소문이 있길래 약간의 거짓말.. 아니 좀 크게 거짓말을 했다. "결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고 (사실) 1년 반 내내 시도했으나 (왕거짓) 마음처럼 임신이 쉽게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산부인과에 갔을 때 한 번도 Polycystic Ovary Disease (PCOS=다낭성)라는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나 스스로 의심이 되니 한 번 여기서 다시 검사해 보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일반 클리닉에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그냥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연결해줄 테니 스스로 예약하고 검사받고 오라는 말만. 생리 사흘 차에 후다닥 병원을 찾은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검사는 해준다니 감사히 종이(Requisition Form)를 받아들고 나왔다.
클리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초음파 예약부터 했다. 클리닉에서 나오자마자 Mayfair Requisition Form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해, 차를 끌고 집에 와서 주차하고 집에 올라와 손을 씻고 간식을 뜯고 먹는 그 순간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대단하다 정말. 장장 40분 동안 기다리다 겨우 연결이 되었다. General Ultrasound for Pelvis를 예약하고 싶다고 말하자 이름, 성별, 헬스케어 넘버, 집 주소, 연락처, 그리고 이메일주소를 물어봤다. 검사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날은 일주일 뒤인 7월 9일이었다. 초음파 한 번 보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래도 아쉬운 사람은 나니까, 일주일 뒤로 예약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일주일이면 엄청 빠르다!)
바로 다음 날인 7월 3일, 피검사를 하러 랩(Laboratory)에 갔다. 초음파를 예약한 뒤에 바로 피검사도 예약하려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가장 빠른 예약이 두 달 뒤였기 때문에 그냥 Walk-in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혹시 몰라서 아침도 굶고 아침 일찍 간다고 갔는데, 이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필 날씨도 역대급으로 좋은 날이라 장장 50분을 뙤약볕 밑에서 대기하다가 들어갔다. 들어간 순간부터는 금방 진행되었다. 입구에서 손 소독을 하고, 리셉션에 Requisition Form을 제출하고, 헬스케어 카드를 보여주니 검사실 번호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몇 번 방으로 가라 알려줬다. 알려준 검사실로 가니 정말 의자랑 테이블 하나만 덜렁 있는 작은 방이었다. 내 뒤로 따라온 테크니션이 5분 만에 여섯 통이나 피를 뽑아갔다. 다행히 아프진 않았다.
초음파는 예약하자마자 이메일로 예약컨펌 및 안내메일이 온다. 예약자 이름, 검사 날짜와 시간, 장소, 주차 안내와 더불어 주의사항이 적힌 메일이다. 건강검진이나 내시경할 때 몇 시간 전부터 금식하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초음파를 위해 생수 1.5를 마시라는 소리는 또 처음 들었다. 검사 90분 전부터 물을 마시기 시작해서 30분내로 1.5를 다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지 말라고. 화장실 참는 게 힘들지 물 마시는 게 뭐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어? 라고 생각했던 나를 원망한다. 정말 힘들다. 700㎖쯤 마셨을 때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살짝만 긴장을 풀면 고대로 물을 다 토할 것만 같았다. 정말 겨우겨우 말 그대로 겨우겨우 1.5를 꾸역꾸역 다 마신 후 우버를 타고 초음파 병원으로 향했다.
친한 캐네디언 이웃이 그랬다. 초음파 검사가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검사 중 하나라고. 물 잔뜩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면서 기계로 배를 사정없이 짓누른다고. 그냥 웃으면서 듣고 잊고 있었는데, 검사 내내 그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진짜 사정없이 누른다. 방광 터질 것 같은데. 날 담당해준 사람이 실습생이라더니 왠지 시간도 더 오래 걸리는 느낌이다. 30분 정도 한참을 그렇게 방광을 압박하더니, 배 초음파는 선명하지 않아서 질 초음파를 할 테니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일단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신나게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이럴 거면 왜 물을 마시고 배 초음파를 했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질 초음파 하면 되잖아.
검사를 끝내고 결과는 하루 안에 내 패밀리닥터가 있는 클리닉으로 전송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초음파 전공의들은 절대 초음파에 대한 결과를 말해주지 않는다. 아이고 답답해라. 한국에서는 병원 가면 한 번에 검사 싹 하고 숙제 날도 며칠 쥐여주고 그런다던데,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 그래도 적응해야지 하는 수 있나. 내가 한국이 아닌 여기서 평생 살았으면 이게 답답한 건지도 모르고 살았을 테니 일단 참아본다.
-
검사가 끝난 주말, 밴쿠버에 다녀왔다. 남편 여권 만료일 때문에 비자 기간이 짧게 나온지라 여권갱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이왕 멀리 다녀오는 김에 약간의 관광도 하고 왔다. 친구들은 밴쿠버 가면 최소 일주일은 놀고 오던데, 일단 그럴 돈도 없었고 주목적도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2박 3일로 짧고 굵게 다녀왔다. 짧았지만 아주 알차고 만족스러운 밴쿠버였다. 되돌이켜보니 이때가 마지막 생리 후 2주째 되는 시기였다. (생리불순인 내 기준으로는 생리가 끝난 지 고작 이틀 정도 지난 날이었다.)
-
해야 하는 검사를 모두 진행하고 나면 당연히 클리닉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검사 결과가 모두 클리닉에 도착했으니 다시 클리닉에 방문하여 패밀리닥터로부터 결과를 듣도록 하시오' 같은 연락. 하지만 캐나다는 그런 호의를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호의가 기본인데 내가 다닌 클리닉이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밴쿠버에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나도 -초음파 검사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기에 내가 직접 전화해서 또 다음날로 예약을 했다. 그게 맞는 절차인가보다. 그렇게 7월 17일에 또 클리닉에 방문하게 되었다.
혈압을 재고, 키와 몸무게를 재고, 패밀리닥터와 마주 앉았다. "응, 너 PCOS (다낭성) 맞네."라고 의사가 말했다. 남들보다 임신하기 힘들 테니 일단 Fertility Centre(난임 전문센터)로 연결해준다고 했다. 거기서 내게 곧 전화를 줄 것이라 했다. 캐나다 기준으로 '곧=soon'이 어느만큼의 기간을 뜻하는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기간보다 더 나를 떨리게 하는 것이 돈이었기에 "헬스케어로 커버돼..?"라고 먼저 물어봤다. 먼저 내 상태를 자세히 확인한 후에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금액이 달라져서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