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잼이 첫 초음파

임신 8주차

by 안나

아침 6시면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변이 마려워서 깨는 거로 시작했다. 자궁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방광이 압박되어 그런가보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점점 자다가도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뭐라도 입에 넣으면 그나마 괜찮았다. 그것 외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야식까지 책임지는 남편

재스퍼를 다녀온 다음 날인 8월 18일 화요일부터 입덧 증상이 시작되었는데, 하필 그 주는 빡빡한 일정이 있었다. 화요일은 친구들과 장을 보러 갔다가 일하러 갔고, 수요일은 친구들과 바베큐파티를 하다가 일하러 갔고, 목요일에는 바비큐 파티에서 남은 고기를 리싸네 집에서 먹고 일하러 갔다. 프로 참석자로서 약간 메슥거리는 정도로 빠질 순 없었다. 속이 안 좋아서 죽을 싸 들고 다녔는데, 그때부터 친구들이 어마어마하게 걱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직 초음파도 못 본 상태라 진짜 내 배 속에 태아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때에 벌써부터 임신 사실을 밝힐 순 없었다. 임신 초기인 12주가 지나서 안정기에 접어든 후에 보통 어나운스한다고 하니 친구들도 이해해줄 거라 믿으며….​


그 주 금요일쯤이었나 죽이 좀 질렸다. 남편이 친구들이랑 놀러 나간 밤이었나보다. 몰래 죽에다 핵불닭소스를 아주 소량 또로록 넣고 치즈를 넣고 돌려먹었다. 너무 조금 넣었나 보다. 분명 입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먹고 나서부터 극악한 복통이 시작되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내 즐거움이 이렇게 하나씩 사라지는 거구나, 라는 걸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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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8월 31일이 왔다. 벌써 8주 6일 차인데 여태 한 검사라고는 소변검사뿐이니 나 스스로가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임신한 상태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하루에 두세 번은 남편한테 말했다. "애기 없으면 어떡해?" 진짜 불안했다. 없으면 없는 거지 뭐.. 라고 생각은 해도 마음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첫 초음파 당일 아침에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약확인 메일을 열어봤는데, 빨간 글씨로 적힌 문구를 그제야 발견했다. To ensure social distancing we ask that only the patient attend the appointment. Only the patient will be allowed in the exam room. 임산부만 초음파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첫 초음파인데, 임신은 둘이 같이했는데, 남편은 못 들어가고 나만 들어가서 본다고?? 벅차오르는 순간을 혼자 견뎌내야 한다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남편을 붙들고 눈물 몇 방울 떨궜다. 그러다 또 결국엔 어쩔 수 없지 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열심히 또 물을 마신 후에 (^^ 다행히 이번엔 1였다) 초음파 센터로 향했다. 리셉션에서 이름을 말하고, 주차등록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예약 확인 메일과 인스트럭션
EFW Radiology 방사선전문센터
대기실

동시간대에 예약 인원이 네 쌍이었다. 다들 백인이라 살짝 위축되었다. 난 평생 이렇게 백인 공포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가. 내 자녀는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아무튼 대기실에 있다가 이름 불려서 따라가는데 다들 주춤주춤했다. 남편도 따라가도 되는 거야 안되는 거야? 근데 다들 주춤거리자 호명해주던 분이 웃으면서 다들 따라와도 된다고..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긴장해서 영어가 더 잘 안 들렸다) 그렇게 네 쌍의 커플이 각각의 탈의실 같은 곳에 앉아있다가 각자 다른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테크니션이 안내해준 초음파실에서 나는 배드 위에 누웠고 남편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테크니션이 내 배 위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기계를 갖다 대고, 우중충한 화면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열심히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우리도 볼 수 있게 침대 아래쪽에 화면이 하나 더 있었는데,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말했는데 못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다. 대충 8주 차 초음파가 어떤 모습인지 인터넷으로 사진을 열심히 찾아봤었기에 눈치껏 보고 있었는데, 도저히 아기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Doesn't look like a baby.."라고 했더니 그제야 테크니션이 웃으면서 설명해줬다. “이게 애기야. 왼쪽이 머리야. 가운데 반짝반짝하는 게 심장이야. 심장 박동 좀 볼까? 잘 뛰네! (심장소리는 안 들려주고 박동 그래프만 보인다) 뭐도 정상이고 뭐도 정상이야 (또 못 알아들음)” 암튼 정상이라길래 안심했다. 갑자기 그냥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던 물체가 애기라고 하니 눈물이 났다. 난 안 울 줄 알았는데 정말 울컥할 새도 없이 눈물부터 나더라. 테크니션이 화장실 다녀오라면서 자리를 비워줬다. 동영상 촬영이 금지지만 마치 잠깐 촬영할 수 있게 자리를 비워준 것 같았다. 으앙 눈물 두어 방울 흘린 뒤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초음파 검사는 10분 만엔가 금방 끝났다. 센터에서 나가면서 12주 차 초음파, 19주 차 정밀 초음파도 예약하고, 초음파 사진도 받아서 나왔다. 태아 크기가 내 예상보다는 좀 작길래 주수가 다시 적어지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8주 6일 차가 아닌 8주 0일 차였다. 네 쌍의 커플 중에 우리가 제일 먼저 나왔길래 처음에는 '칫.. 우린 10분 만에 끝났는데 다른 애들은 더 길게 초음파 봐주나 보네.. 인종차별인가'하는 자격지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다음 초음파를 예약하는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려서 우리가 제일 빨리 끝내고 나올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초음파 보는 게 태아에게는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걸 또 어디서 주워들었기에 그냥 좋게 생각하며 나왔다.

놀라운 건 초음파 사진을 진짜 딱 한 장 밖에 안 준다는 거다. 한국은 막 세 장 네 장씩도 주고 동영상도 녹화해서 어플로 볼 수 있게 해준다던데! 한국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캐나다의 시스템이 그저 더 실망스러울 뿐이다. *친구에게 듣자하니 처음에 접수할 때 사진을 추가로 살 수 있는지 물어보면 몇 장을 usb에 담아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접수 시에 말해야 한다. (나는 이걸 정규 초음파 다 끝나고야 알았네;;;;)

피팅룸 같았던 대기실
꿀잼이 8주 첫 초음파: 심장이 반짝반짝
예약 안내 페이퍼
꿀잼이 첫 초음파

슬슬 먹을 수 있는 음식에도 제한이 생겨, 머리로는 딤섬이 먹고 싶은데 진짜 입으로 넘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에이 몰라 기쁜 날 먹고 싶은 음식 눈으로라도 보자 하는 마음에 초음파 끝나고 나오자마자 큰맘 먹고 딤섬을 픽업 주문했다. 자세한 내용은 전에 일기로 적었으니 건너뛴다. 아무튼 많이는 못 먹었지만 적당히 맛있게 딤섬을 먹고, 글랜모어 저수지에서 초음파 기념사진도 찍었다. 날씨도 정말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누구보다 행복하더라. 인생의 신비.


만찬

그길로 바로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직 집에 프린터가 없어서 동네 도서관 프린터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장장 6개월 만에 가보는 도서관이었다. 단 한 장뿐인 초음파 사진을 어떻게 해서든 두 장 더 뽑기 위한 우리의 노력. 무사히 사진을 뽑아 들고 또다시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바쁘다 바빠!

항상 한국으로 택배 보낼 때 제일택배를 이용해왔는데, 서류만 보내는 건 한미우체국이 5불씩 더 저렴하길래 이번엔 한미우체국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서 미리 준비해둔 양가 부모님께 보낼 편지에 초음파 사진을 끼워 넣고 맡겼다. 일주일 뒤인 9월 7일에는 도착한다는 말에 좀 더 일찍 도착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왔다.


서프라이즈

그리고 정말 조금 일찍 도착했다. 8월 31일 월요일에 보낸 편지가 9월 5일 토요일에 도착했다. 놀라운 속도! 양가 부모님 모두 너무 기뻐하고 좋아해 주셨다. 다행이다. 솔직헌 심정으로는 우리 엄마는 조금 날 걱정해줬으면 했지만 뭐 기뻐해 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역시 서프라이즈 팍 안나 팍. 이번 서프라이즈도 성공적이었다.

이제 뱃속에 실제로 꿀잼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확인이 되었으니, 부디 나도 꿀잼이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만났으면 좋겠다. 난 입덧 때문에 좀 아프다. 근데 내가 아파서 끙끙대는 게 너에게도 영향이 미칠까 걱정된다. 분명 억지로라도 세 끼를 챙겨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살이 점점 빠진다. 이러나저러나 걱정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애기걱정이 평생 가는 거겠지? 건강하자 꿀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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