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지옥

임신 9주차

by 안나

첫 초음파로 제대로 된 임신주수를 알게 된 후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정확히 6주 1일 차부터 입덧의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6주에서 8주 사이에 입덧이 시작된다더니.. 이럴 때마다 나도 한낮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렇다면 12주에서 16주는 되어야 입덧이 가라앉는다는 말인데, 그게 정말이길 바라면서도 앞으로 심해질 날이 최소 3주나 더 남았다는 생각에 조금 눈물이 난다. 당장 1분 뒤의 내가 편안한 속을 가지고 있을지 갑자기 울렁거릴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초반에는 아침에만 울렁거렸다. 벌써 3주째 매일같이 새벽 5~6시에는 욱 하고 올라오는 느낌과 함께 눈을 뜬다. 한두 시간 버티다가 남편을 깨운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입덧이 시작된 이후로 줄곧 아침 식사는 남편이 차려줘 왔다. 8주 차까지만 해도 아침에 뭐라도 먹고 나면 속이 진정됐었다. 그런데 9주 차에 진입하니 아침을 먹으면서도 울렁거린다. 쉬엄쉬엄 거의 꾸역꾸역 다 먹는다. 안 먹으면 다시 잠들 수가 없어서.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밤에 잠들기 전에 엽산 400mcg 두 알과 비타민d 1000IU 한 알을 먹는데, 먹고 나면 5-10분 뒤부터 또 미친 듯이 울렁거린다. 하루종일 목 끝까지 음식이 차 있는 느낌. 목구멍을 살짝만 오픈해도 내장까지 쏟아낼 것 같은 느낌. 벌써 입안이 다 부르트기 시작했고 조만간 식도염과 후두염으로 심하게 앓을 것 같다. 그렇게 계속 버티고 있다.



엽산
비타민디



입덧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래도 먹고 싶은 것들이 조금씩은 생겼더랬다. 조금 매콤짭짜름한 주꾸미도 먹을 수 있었고, 라면도 먹었으며, 찌개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주한주 지나며 세상 제일가는 맵찔이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상큼한 면 종류는 잘 들어갔다. 냉면, 냉모밀, 밀면.. 그러다 점점 음식 간에 예민해지는 게 느껴졌다. 특히 간장과 마늘. 조금만 간이 세도 못 먹겠다. 구역질이 나온다. 아침에 토스트도 겨우 먹고, 우유도 너무 구수해서 몇 모금 못 마신다. 과일도 너무 시면 바로 속이 울렁거린다. 이제는 거의 살기 위해 그냥 입에 들어가는 것만 찾아 욱여넣는 상황에 다다랐다.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지난주에 상큼하고 시원한 게 먹고 싶어서 구태여 마트까지 가서 샤베트를 사왔더랬다. 사오고서 두어 번은 소량씩 먹었는데.. 그러고 나니 딱 입에서 거부반응이 왔다. 그 후로 손도 안 댔더니 하루는 남편이 샤베트를 밤에 혼자 먹고 있었다. 같이 먹자는 남편에게 도저히 못먹겠어서 아니라고 대답하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먹겠다고 사와서는 지금 꼴도 보기 싫은 음식이 냉장고에 한가득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처량했다. 울면서도 속으로 ‘왜이래 왜이래 나 왜이래’ 하며 당황하는 상황. 내가 너무 낯설다. 당황하며 달래주는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부끄럽다.



9주 차인 지금 겨우 먹는 음식이라고는 아침 토스트 한 장, 멜론 서너 조각, 생대추, 생강과자, 누룽지 딱 그 정도. 퀴노아 샐러드 만들어 먹으면 좀 들어갈까? 모체가 쫄쫄 굶더라도 태아는 잘 큰다고는 한다. 그래도 영양분 밸런스가 무너질까 봐 걱정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다 하다니.



일주일에 4-5일 저녁에 일을 하러 가고 있다. 가기 직전까지 침대에 고꾸라져 있다가 겨우겨우 일어나서 준비하고 간다. 그마저도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좀비처럼 말도 잘 못 하다가 몸이 적응하면 어찌어찌해내는 정도. 문제는 다음 주부터다. 코워커들이 전부 다 학생이라 평일 오프닝 시프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다. 이미 7주 차에 사장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렸는데, 어느 정도 배려해주려고는 해도 역시 사업체를 굴리는 사람은 일이 우선인가보다. 다음 주부터는 오프닝을 해야 된다고,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한다고. 배신감도 느끼지만, 이해도 된다. 몸에 맞지도 않는 엽산을 새로 살 배짱조차 없을 정도로 한 푼이 아쉬운 내가 그에 맞춰야 한다. 다행히 저번에 입덧 약을 미리 사놨으니 오프닝 하는 날 전날에만 한 알씩 먹으며 버텨봐야겠다.



9주 3일 차였던 9월 10일, 밤에 배가 고파서 속이 너무 울렁거리고 곧 실신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냉면이 딱 한 입만 먹고 싶어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밤 12시 30분에 일어나서 냉면 면을 삶아줬다. 정말 조금, 한입 정도만. 옆에서 후다닥 육수를 준비하고 정말 딱 한 입만 먹으면 아쉬울까 봐 세 젓가락으로 나눠서 먹었다.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살면서 야식을 딱히 먹어본 적도 없는 내가 요즘 하루 세끼를 챙겨 먹으면서도 밤에 이렇게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니 무섭고도 신기하다.



야식 (좌)냉면 세 젓가락 / (우)유서방표 미역국에 숭늉



임신 과정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한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출산만 두려웠다. 입덧이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건 정말 생각도 못 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아니라 장장 두세 달, 길게는 출산 직전까지도 이어지는 고통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그래도 애기가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한 거야” 이 말은 분명 자궁도 없는 남자들이나 망각증이 생긴 사람들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제아무리 사실일지언정 임신 중인 사람에게, 특히 입덧으로 고생 중인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말이다. 특히 임신 경험 없는 사람은 제발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말길. 맘카페들 보면 ‘차라리 육아가 낫다.’, ‘입덧보다 출산이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두루빽빽이다. 이래놓고 나도 나중에 또 모든 걸 망각한 채로 둘째 생각을 하게 되겠지? 지금은 낮에 잠깐잠깐 와서 울어대는 고양이들만으로도 귀찮은데, 그마저도 고양이들은 밥 먹이고 쫓아내면 알아서 노는데, 인간 아이를 돌보며 입덧을 견딘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 생각만 해도 속이 또 울렁울렁 파도친다.



한국인 입덧엔 Korean comfort food 숭늉과 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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