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주차
10주 2일째부터 조금 입덧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 아직은 물론 밤에 푹 잠들지 못하고, 밤에 엽산과 비타민d를 먹고 나면 속이 쓰리고 느글거리는 증상이 있기는 하다. 오전까지는 기운이 없고 살짝만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기립성 저혈압으로 눈앞이 핑 돌고 컴컴해진다. 냄새에는 점점 더 예민해져서 냉장고 문만 열어도 숨을 참아야 한다. 그래도 이제 간혹 요리도 할 수 있고 낮에는 속 불편함이 조금 덜하다. 누룽지가 아닌 쌀밥도 잘 넘어가고 일할 때도 기운 내서 일할 수 있는 정도다. 짧아도 12주, 길면 16주, 심하면 막달까지도 입덧을 한대서 정말 걱정이 많았는데, 10주 차에 이 정도로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바뀌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언제 또 갑자기 증상이 발현할지 모르는 것이니 방심은 금물이겠다.
낮에 기운이 좀 돌아오니 되려 걱정이 많다. 첫 초음파 보기 전에 “애기 없으면 어떡해?”라며 걱정하던 습관이 되돌아왔다. 워낙 소화/배출 기능이 떨어지던 터라 이게 그냥 내 배가 아픈 건지 입덧 때문에 아픈 건지 확신이 서지도 않는다. 아프면 힘들고 안 아프면 걱정되고. 이 걱정이 임신 중기/후기를 지나 출산 후에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어서도 죽을 때까지 이어질 거란 생각을 하니 그저 막막하다.
예전에는 임신하면 태교와 아이 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임신하고 보니 일단 먹고 살 생각에 몸이 고된 일이라도 최대한 오래 하고 싶고, 맨날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있다. 태교 음악 좀 들어볼까 해도 다시 아이유 노래, 백예린 노래, 태연 노래 메들리. 캐나다 맘스톡 카페나 또래 맘카페 글을 봐도 맨날 똑같은 얘기만 있고 유산 걱정만 늘어서 되도록 필요한 내용만 찾아보려고 하게 된다. 베이비 빌리, 말랑하니, Pregnancy+ 같은 어플도 매일 똑같은 내용만 보이니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가서 태아 이미지가 얼마나 바뀌었나, 태아 크기가 몇센치쯤 되었을까만 확인하고 만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는 사이트가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맘커뮤니티인 what to expect라는 사이트/앱에 가입하며 출산예정일을 등록하면, 자동으로 출산예정일 월별로 생성된 게시판의 일원이 된다. 나는 2021년 4월 게시판에 가입이 되었다. 그러고 나면 하루에 한 번씩 게시판에서 핫한 게시글을 메일로 보내준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 예정인 예비맘들이 모인 게시판이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고민거리나 증상이 비슷하다. 요즘 자꾸 실감 나는 꿈을 많이 꿔서 피곤하고 아침마다 제정신이 아닌데, 그날 vivid dreams를 꾸는 예비맘들의 한탄 글이 올라와 놀랐다.
* Premom: 임신 준비 중에 잘 사용했던 배란테스트 앱.
* 베이비빌리: 한국 앱으로, 태아의 변화와 임산부의 변화를 주수 별로 알 수 있게 보여준다. 임산부 본인뿐만이 아닌 남편이 알아두면 좋을 꿀팁도 많이 올라와 있는 편이다. 몸무게 변화 등을 기록해둘 수 있다. 특히 매주 변화하는 태아 그림이 정말 귀엽다.
* Pregnancy +: 베이비빌리와 비슷한 영어권 앱. 베이비빌리보다 조금 더 현실감이 있는 느낌이다. 병원 예약이나 플랜 등을 기록해둘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꿀팁들도 더러 올라오는 편이다.
* What to Expect: 미국 임산부 커뮤니티 앱. Pregnancy+와 비슷한 기능도 제공하고 있으며, 더불어 커뮤니티 그룹에 가입하여 비슷한 임산부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준다. 출산시기로 생성된 그룹 혹은 인종이나 지역별로 나뉜 그룹 게시판에 새로 올라온 핫한 게시글을 매일 이메일로 보내준다.
* Baby Center: What to Expect와 비슷한 앱인데 한국어도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자동으로 캐나다로 분류가 되어서 한국어 버전을 이용해보지는 못했다. 거의 임신 바이블 수준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커뮤니티 게시판도 이용할 수 있다.
* My Chart: MyAlberta Digital ID 웹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집주소, Photo ID 등을 입력 후 우편으로 Activation code를 받아 계정을 Activate하면 My Chart어플을 통해 피검사나 임당검사 결과를 빠르게 볼 수 있다. 사실 어플 자체는 잘 구동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하나둘 나의 의지, 나만의 삶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뭔지 알겠다. 예전에 어떤 남자가 출산을 앞둔 여성분 앞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여자들은 열 달 동안 임신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잖아, 남자들은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갑자기 애가 뿅 하고 나타나서 더 당황스럽다고.” 다들 벙쪄있고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라도 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라고 대답하고 웃으며 급하게 대화 주제를 바꿨더랬다. 이제 와서 임산부가 되어 생각해보니 여자들은 임신 중에 본인 스스로를 조금씩 포기하는 방법을 어쩔 수 없이 익히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입덧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24시간을 버티는 것, 좋아하던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 산책조차 버거운 것, 운동이든 요리든 베이킹이든 독서든 무엇 하나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다는 것 등등. 그런데 이게 그렇다고 단계별로 오는 것도,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갑자기 어느 날 좋아하던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눈물이 나고, 갑자기 요리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그런 거다. 그러니 남자들만 당황스러운 척하는 건 진짜 말도 안 된다. 아무튼 나도 이렇게 하나씩 포기해가고 있다. 쓰읍 씁 하면서 매운 음식 흡입하고 싶은 마음, 짬뽕 한 바가지 끓여서 3일 내내 먹고 싶은 마음, 밖에 나가서 한두 시간씩 걸어 다니고 싶은 마음, 가만히 앉아서 활자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 영양소 생각 없이 달다구리로만 하루 세끼 충전하고 싶은 마음, 그날 기분과 식단에 맞춰 맥주 막걸리 양주 와인 골라 마시고 싶은 (지금은 생각조차 안 나지만) 마음 다 꾹꾹 눌러가며 태아 건강에만 신경이 쓰인다. 이제 이렇게 장거리 여행도 포기해야 하고 의미 없는 외출도 포기해야 하고 맘 편히 식사하는 시간도, 푹 잠드는 숙면도, 입고 싶은 옷도, 나만의 조용한 시간도, 나만을 위한 투자도 다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우르르 몰려오겠지. 이런 생각이 들면 미친 듯 슬프고 살짝 후회되다가도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또 걱정하게 된다. 생각도 맘대로 못해 우씨.
어릴 때부터 종종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많으면 1년에 서너 번, 적으면 한 번 정도 이랬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심장 쪽 갈비뼈가 꾸왁 하고 아픈 증상이다. 항상 3초 내외로 아픔은 사라지기 때문에 잊고 살기 일쑤였다. 진짜 그냥 갑자기. 이유도 없이 갑자기 꾸왁!하고 아파서 “악!!” 한다. 그럼 꼭 주변 사람들이 “왜 그래!” 물어보고 나는 “아 모르겠어요. 가끔 이래요. 괜찮아요~”하고 말곤 했다. 그래도 무서울 땐 인터넷을 찾아보곤 했는데, 혈액순환이 어쩌고 심장이 어쩌구.. 딱히 병원에 간다고 해결될 일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임신하고 나서 이 증상이 자주 일어난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왼쪽 갈비뼈 쪽이 전체적으로 콱하고 아프고 그게 20초 정도 지속된다. 방금 또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다 보면 이런 증상이 발생한다는데, 왠지 일리 있어 보인다. 워낙 소화 배변 기능도 떨어지는 편이고 최근 임신으로 인해 그 기능들이 더 안 좋아지긴 했으니까. 그래도 무서우니까 나중에 심장 검사라도 받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