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티슈 상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모모 어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소아정신과 진료실 문을 열었다. 기다란 원목 책상에 앉아 있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무슨 이야기를 쏟아 내어도 차분히 들어주시겠다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손님을 맞이하는 앤티크 한 디자인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무슨 말을 듣게 될까? 긴장감이 몰려왔다. 상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티슈 상자 티슈가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있었다. 이게 왜 눈에 먼저 들어왔나.
‘설마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오기 전까지 어떤 말을 듣게 되더라도 수용할 수 있다고,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달랬는데 말이야.’ 속말을 되뇌었다. 아니 있더라도 울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흘리게 되는 눈물처럼 느껴질까 두려웠다. 초조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의사 선생님께서 모모의 종합심리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기를 기다렸다. 부모가 알아야 할 내용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작은 노트를 펴고 볼펜을 들었다.
ADHD입니다, 그 한 문장이 심장을 때렸다
“모모는 주의집중력 및 충동조절에 어려움이 있어요. 자기 관심사가 아니면 개입하지 않으려는 바 학업과정 중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제한이 있고 인지기능이 균형적으로 발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적 판단 기능이 부족하고 기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충동조절에의 어려움이 있네요. ADHD입니다.
한 줄도 적지 못한 수첩을 덮었다. 내 귓가에 박힌 ADHD 단어가 심장에 박혔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절대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던 티슈를 2장 뽑아 재빠르게 흐르는 눈물의 흔적을 치웠다.
”어머, 선생님 죄송합니다. “ 이 말이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모를 키우면서 마음속에 구석구석 박혀있는 ‘나는 부족한 엄마입니다.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해서 불편을 끼친 엄마입니다.’라는 감추고 싶은 수치가 드러났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에도 죄인 모드 버튼이 눌려진 내가 싫었다.
”어머니, ADHD 이상한 거 아니에요. 치료받고 좋아질 수 있어요. 큰 문제 아닙니다. “
”선생님, 모모가 6살 때 종합심리검사를 받았어요. 그때는 ADHD가 아니라고 했는데요....
아이가 싫다고 해도 제가 더 빨리 알아봤어야 했는데요. 6학년이 돼서 왔네요. 어떻게 하죠. 중요한 시기 도와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혹시 제 문제일까요? 모모 어렸을 때 감정을 일으키면서 부부싸움을 한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향을 준 게 아닐까요? “
”아닙니다. ADHD는 부모의 잘못이 아닙니다. 뇌 생물학적 다른 특징이 있어요. 양육의 문제라거나 부모가 너무 허용적으로 키워서 그렇게 되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에요. “
부드럽지만 단단한 어투로 설명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은 한없이 부서졌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선생님은 ADHD 진단을 몇 번째 한 걸까? 나는 이 자리가 처음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겠지만, 그냥 많은 사람 중 하나로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흘리는 눈물에 위로받고 싶었다. 마음이 어떤지 헤아림의 말을 듣고 싶다. 감정은 감정일 뿐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를 깨닫는다.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안도의 눈물
종합심리검사 결과지에 나온 글자를 하나하나 다 털어놓아도 모모의 빛나는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안 좋은 모습, 숨기고 싶은 모습, 모성애를 무너지게 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기록만 가득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설명이 나올까 심호흡을 했다.
”부모에 대한 신뢰감이 있고 양육자와의 애착 형성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네요. 어머니 상이 내재 되어 있고 어머니와의 관계 내 따뜻함과 안정감을 충분하게 경험해 온 상태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아버지상의 부재 상태가 드러나고 아버지와의 관계 내에서는 편안함과 친근감이 부족한 채 지내온 듯합니다. “
또 한 번의 눈물이 흘렀다. 안도의 눈물, 미안함의 눈물, 고마움의 눈물이 나를 덮었다. 엄마의 자존감을 갉아먹게 한 꼬리표가 떼어지는 날이자, 이 모든 게 남편 때문이야. 하는 가장 위험한 낙인이 생길 수 있는 순간이다. 이 자리에 왜 혼자인가? 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남편인데. 남편도 밉고, 남편의 모습에 비추는 아버님도 밉고, 며느리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시는 어머님도 미웠다. 이번에는 모모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고, 동생을 편애할 것에 대한 염려, 전두엽 발달 지연으로 역지사지가 어려웠던 아이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 왜 저럴까? 수많은 물음표가 마침표가 되었다. 생각과 감정이 엉켜있는 사이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ADHD 치료 방법에는 약물치료와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모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했으면 좋겠어요. 약물치료를 하게 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식욕이 저하될 수 있는데, 약물을 복용하고 안정기에 들어가면 괜찮아질 겁니다. ADHD인 아동은 사회성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대화 기술 습득, 공감 능력 향상, 문제해결 기술, 감정 조절 훈련 등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
검사 결과지를 펼쳐보시는 의사 선생님의 입술에서 ”모모는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이 없습니다. “라는 설명을 듣고 세 번째 눈물이 마음속으로 흘렀다.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헤맬 때 환하게 비춰오는 불빛의 말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ADHD 아이들의 2차 문제가 정서적 어려움이라고 한다. 수행능력과 행동 억제,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된다. 끈기가 부족해. 주의가 산만해. 예의가 없어. 등등 가까운 사람(가족, 친구, 선생님)에게 하루에도 수없이 듣게 되는 말이 쌓여서 아이의 가슴에 쌓인다. 아이를 향했던 말, 차가운 시선이 떠올라 마음이 미어졌다.
15분 남짓 종합심리검사 설명을 듣고 내가 질문한 내용은 한 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뒤돌아서 생각 난 수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이것뿐이었다.
”선생님, 모모에게 ADHD라는 것을 말하는 게 좋을까요?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너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검사를 하려고 해. 엄마, 아빠가 잘 알아야 너에게 맞는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알려주고 여러 번 설득해서 온 자리였어요. “
”아이에 따라서 다릅니다. 언제 말하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 번만 오면 끝이라고 모모에게 말했는데, 약물치료를 하게 되면 3주마다 소아정신과에 와야 한다.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은 주 1회씩 한 프로그램당 12회기로 해야 하고 1회 기당 6만 5천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뼈가 마르고 입이 타들어 간다. ADHD 치료 과정에 내 몫이 80 이상일 텐데, 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눈에 그려진다. 온몸이 바짝 굳는다.
집으로 향하는 길,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나를 마주한다. 감정을 추스르는 여유보다 바로 해야 하는 일이 떠올랐다. 삶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돈 앞에서 질질 짜고 있을 수 없다. 나는 모모의 엄마다. 3시간 후 현관문을 열고 ”엄마, 나 왔어. “ 인사를 건네오는 아이를 어제와 다름없이 맞이해야 한다.
힐링맘코치의 빛말테라피
숫자보다 큰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
* '진단'은 아이의 전부가 아닙니다.
검사 결과지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만, 아이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이의 가능성은 검사지에 적힌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어요. 숫자는 한계를 말할지라도, 엄마는 아이의 지금과 내일을 봐야 합니다. 아이의 장점과 빛나는 모습을 놓치지 마세요. 기록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 '진단'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습니다.
ADHD라는 이름표가 붙었지만, 이제 아이가 어떤 도움을 받으면 좋을지 알게 된 것뿐이에요. 무언가를 알았다는 것은 그만큼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이 말해준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과 약물치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아이의 빛나는 가능성을 찾는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모의 진단명에만 집중하지 않고, 아이가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