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ADHD 진단 이후

사랑은 다시 시작되었다

by 느린숨

정적이 가득한 교실에서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텅 빈 교실엔 차가운 정적이 공간을 메웠다. 그 정적이 내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고, 그곳에선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평범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라면 이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호출하지 않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은 요동쳤다


“모모 어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전화로 몇 번 상담을 했지만,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모모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조금 특별한 곳을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모모는 아빠랑 더 친한가요? 엄마랑 더 친한가요? 가정 보육을 언제까지 하셨나요? 엄마랑 관계는 어떤 것 같아요?.....”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에 숨이 막혔다.


“네, 선생님 모모가 에너지가 많고, 6세까지 다녔던 어린이집 생활을 힘들어했어요. 한 반에 30명 정도 인원도 많았고요. 자연 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맘카페를 통해서 동네 산에서 숲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알게 되었어요. 1년 반 동안 자연에서 사계절을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엄마보다 아빠랑 더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모모와 남편이 축구를 좋아하는데 공통 관심사로 나누는 게 많아요”


선생님은 모니터를 응시한 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자에 깊숙이 기대었고, 질문의 매듭이 풀릴 때마다 가슴이 죄어왔다. 마치, 취조실의 한 장면 같았다.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1시간쯤 흐른 뒤 선생님은 말했다., “부모가 사랑으로 키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내게 이런 말이 돌아왔다.


‘ADHD입니다’가 가져온 해방


그동안 선생님은 모모의 모습에서 애착 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쉬는 시간에 교실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 체육 시간에 규칙을 지키지 못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욕이 튀어나오는 아이. 그 모든 원인의 뿌리를 나에게서 찾았다.


“모모는 엄마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해서 불안정 애착을 보입니다.

교실에서 보이는 문제 행동은 자존감이 낮아서 생긴 일이죠.”

수없이 반복된 그 말이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물론 선생님의 사랑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로서 사명감이 없었다면 포기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모모를 향한 변함없는 관심으로 종합심리검사를 받게 되었다. 모모를 이해하고 도우려면 정확하게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마음속으로 혹시나 하는 단어가 있었다. ADHD, 모모가 6살 때, 처음으로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임상심리사 선생님께서 혹시 ADHD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검사 결과는 아니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서 다시 원점이다. 아니 오히려 더 두렵고 떨렸다. 엄마 탓이라고 해도 심장이 조여지고, ADHD라고 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거다.


그 순간이 다가오지 않길 바랐지만, 결국 마주하고 말았다. 'ADHD입니다.' 그 말이 나를 무너뜨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를 해방시켰다. 그제야 나는 겨우 엄마가 되었다.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불완전하지만 충분한 엄마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모는 ADHD 진단을 받았다. 매 순간 나를 증명하는 자리에 놓였던 사람에서 해방되었다. 엄마로 살았던 12년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력했다. 마치,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 ’모든 게 네 잘못이야.‘라는 환정과 살았던 시간이다. 네가 만약 다른 집에서 태어났다면 지금보다 편안한 마음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지 않았을까?‘라는 도돌이표 노래처럼 말이다.


그땐 몰랐다. ADHD로 인해서 온 오해였다는 것을 말이다. ADHD의 아동은 감정 조절이 어렵다. 전전두엽 발달이 또래보다 늦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엔진이 돌아가는 상황이니 정보처리 능력 또한 부족하다. 행동반경과 목소리가 크다 보니 집중되기 좋고, 오해하기도 쉽다. 도대체 우리 아이가 왜 이럴까? ADHD 진단받기 전까지는 미지의 세계였다. 내 안에 모성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나는 나의 모성을 증명하느라 지쳐있었고, 아이의 ADHD 신호를 인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잘못이 아닙니다. 양육을 잘못해서 ADHD가 생긴 것도 아니고요. 아이가 엄마랑 애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었네요. ADHD 외에 별다른 정서적 어려움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울이나 불안 등 다른 이상은 없어요.”

모모의 종합심리검사 해석을 듣는 자리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한마디가 단단하게 묶여있던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무너진 틈으로 다가온 말이 있었다.


나는 나로서 충분한 엄마야


’ 나는 나로서 충분한 엄마야.‘ 누군가 나를 아이를 방임과 방치하는 엄마라고 말해도 나만큼은 나를 믿어주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노트에 꾹꾹 눌러쓴 문장이다. 나를 믿고 싶었지만,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아이의 행동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혼란 속에서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차곡차곡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너는 나쁜 아이야.” 대신 “엄마는 네 안에 있는 창의성, 탁월함, 사랑.. 등 미덕이 자라고 있어.”라고 빛나는 말을 심어 주었다.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하니? 너는 덤벙이야.”라는 꼬리표 대신 열린 공간에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경험했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연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끄적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던 사랑이 깊게 연결되어 ADHD지만 안정 애착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이의 ADHD를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과거엔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아이의 특성 중 하나임을 받아들였다. 그제야 아이가 보였고, 내가 보였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ADHD 아이를 키우면서 진짜 사랑을 알았다. 사랑은 당장 눈에 드러나거나 보이지 않는 침묵의 구간이 존재한다. 희열과 환희의 농도가 짙어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진짜 좋은 엄마인가? 낮아지는 마음, 모성이 있나? 흔들리는 마음, 때로는 아이가 버거워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멸의 생각까지도 모두 사랑 안에 담겨있다. 그렇게 엄마 마음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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