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버티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모에게 다가갔다. 피할 수 없었다. 오늘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ADHD 약을 끊은 지 9개월, 이제는 말해야 할 순간이었다.
“모모야, 엄마가 할 말이 있어. 오늘 엄마가 정신과에 다녀왔어.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고, 다 다른 점이 있잖아.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사이에서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
운동선수도 한 근육을 많이 쓰면 닳듯이, 엄마의 뇌도 지친 상태래.
이제는 혼자 노력해서는 어렵고, 약을 먹어야 한대.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이라고 하셨어.”
모모는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엄마의 말을 한마디씩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너도 약을 다시 먹어야 해. 아빠는 성인이니까 ADHD가 완전히 좋아지진 않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모모는 청소년이잖아. 약을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어.
엄마는 네가 약을 먹으면 기분이 가라앉고 식욕이 줄어드는 걸 알아서 마음이 아파.
그래도 학교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하려면 병원 진료를 다시 받는 게 좋겠어.”
모모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천천히 엄마를 바라봤다.
“어차피 약을 먹어도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왜 먹어야 해?
엄마도 약 먹어봤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평소라면 소리쳤을 모모가 오늘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우울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 때문에 모모가 상처받지 않길…’ 아이의 자책을 막고 싶었다.
모모는 말없이 엄마를 바라봤다. 안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생각보다 깊어진 우울을 초3 어린 딸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는 내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긴 연휴 속으로 우울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우울은 단순한 무기력과는 달랐다. 해야 할 일을 미루며 생긴 악순환 같기도 했다.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리듯, 기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동네를 한 바퀴 걷는 일이 하루의 전부였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붙잡고, 외부의 소식으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울과 자살 영상을 끝없이 내밀었다.
지금은 감당할 수 없어서, 그 영상을 카카오톡으로 나 자신에게 보냈다. 가벼운 쇼츠에서 아무 상관없는 로맨스 영상까지, 정신이 어지러울 때까지 봤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반갑지 않았다.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숨이 막혔다.
“엄마!”
해맑게 다가오는 둘째에게 나의 우울이 비칠까 두려웠다.
이 또한 상처의 대물림 같아, 내가 너무 싫었다.
그러나 이 생각도 잠시였다. 삶의 의욕이 사라진 내게 하루를 버티는 일은 잔인했다.
자녀를 두고 생을 끊는 엄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라면 닿지 않던 미지의 영역이었다.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두근거리고, 먹먹하다. 온몸이 저릿저릿 울린다.
제발 하루치의 살아갈 힘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삶의 의지가 되어줄 텐데. 머리는 마비된 듯 감각이 없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오히려 평안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남겨질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적어야 하나 싶다.
아무 흔적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이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그때라도 늦지 않았다. 비 내리는 가을길,
걷는 발걸음을 따라 그동안 눌러놓았던 감정을 하나씩 마주했다.
‘왜 그렇게 참았니? 부탁할 때 들어주지, 이제야 아는 체하는 남편이 너무 밉구나.
잠시 좋아지는 척하다 다시 돌아갈까 봐 무력하지?’
감정이 손님처럼 하나씩 찾아왔다. 빗물에 젖은 바지처럼 마음이 축축해졌다.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깨어났다. 잃어보고 무너져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익숙한 길을 오늘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적인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과 같은 공간을 걷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 남아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직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나를 끌어안는 한 문장을 만났다
“우리는 지금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산 날 가운데는 견딘 날도 있고, 겨우 버틴 날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날을 힘든 날이라 하지만, 하나님은 ‘너희가 나의 도움을 받아 사랑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에게 ‘애썼다, 수고했다, 그게 사랑이야. 너, 그거 사랑한 거야.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조현삼, 홍해대전>
온 힘을 다해 걷길 잘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었다.
움직인 만큼, 보이지 않던 진리가 보이고 들렸다.
그렇게 나는 하루치 살아갈 힘과 의미를 다시 찾았다.
버틴다는 건 단지 견디는 일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나는 사랑했고,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