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쪽으로 들어오세요. 데스크에 직원이 자리를 비웠네요. 안녕하세요. 처음 방문하셨죠? 어떻게 오셨을까요?”
“우울감으로 오게 되었어요.”
동네에 있는 정신과를 방문했다. 마음속으로 수차례 상상에 머물렀던 곳이다. 자세는 어떻게 하고 앉아야 할지 어색함과 초조함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정한 말투를 지녔을지, 아니면 내가 왜 우울증에 빠져버렸는지 납득을 시켜야만 하는 상황이 오려나? 본능적으로 이곳이 안전한지 탐색을 한다.
낯설지만 익숙한 병원 진료실의 네모난 풍경 안에서 책상 위에 올려진 여러 마리의 종이학을 보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흰 포스트잇으로 접힌 종이학과 그 옆에 접다가 망쳐버린 종이가 함께 있었다. 몇 방울 똑똑 흐르고 멈춰버릴 눈물이라 생각했는데 홍수가 나버렸다. 아직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가 시작도 되기 전에 나는 이미 마음의 빗장을 열고 환(내담) 자의 자세가 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종이학이 건네오는 따뜻함이 좋았다.
손을 뻗어 티슈를 뽑는 나를 보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괜찮아요. 실컷 울어요.”라고 말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인생의 슬픔이 목구멍으로 하나씩 하나씩 배출되었다. 부모교육 전문가, 감정코칭 전문가라는 사람이 자신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우울증이 오게 되었구나. 하는 비판과 함께 애써 외면했던 나의 우울을 마주했다.
“선생님, 제가 왜 이렇게 우는지 알 수 없네요. 그런데 종이학을 보니까 눈물이 나왔어요.”
“아, 이 종이학 치울까요? 내가 종이학을 좋아해요. 이거 8마리인데, 숫자는 8을 좋아하죠.”
“아니에요. 종이학을 보고 정겨운 마음이 들었어요. 저도 이렇게 펑펑 울게 될 거라 상상을 못 했어요.”
멈추지 않는 눈물과 함께 나는 의사 선생님의 시간을 많이 뺏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온 이유를 말했다.
“보통은 일은 하면 기분이 회복되고 좋아지는데 지난 5주 동안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어요. 첫째 아이가 초 6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았고, 1년 뒤 남편도 ADHD 진달을 받았어요.”
“지금 명절 전이라 다른 검사는 어렵고 우울증 검사는 할 수 있어요. 해볼래요?”
눈물을 겨우 닦고, 진료 대기실에서 우울증 검사지 항목을 보며 체크한다. 괜찮아, 보통이야를 나타내는 숫자를 표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는 신호를 따라서 마지막 문항까지 완료하고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죠? 그럴까요?”
“네, 감기처럼 마음의 병이겠죠.”
처음 마주했을 때의 의사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가 아니다. 첫 이미지와 다른데, 내가 다른 사람을 마주한 걸까.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어색한 기운이 돌고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본인 그냥 힘들어서 온 거죠. 내가 힘드니까 그냥 어떤 알아보려고요.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면 노력을 했어야죠? 왜 안 하고 그대로 있었던 거예요?”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났다. 또 내가 잘못했구나. 좋은 딸, 며느리, 엄마,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증명해 보라는 수치심 버튼이 눌러졌다. 몸이 얼어붙고 위축되었다. 아무 말 없이 의사 선생님의 말을 한참 듣고 있다가 용기를 냈다.
“선생님, 저도 노력했어요.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감사 일기도 썼는데 혼자서는 안되더라고요. 지치고 기운 빠지고 그래서 도움을 받으려 병원에 온 거예요.”
‘그냥, 선생님이 저 말을 했을 리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만약에 진짜 이상한 의사라면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본인 첫 질문의 답부터 틀렸어요.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니에요. 울더라도 설명은 잘 들어야 해요. 여기 모니터 화면도 보고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고, 우울증은 뇌의 기능이 지쳐서 약해진 상태예요. 우리가 몸을 너무 혹사하면 근육통, 감기처럼 몸이 아프잖아요. 뇌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많은 스트레스, 정보처리, 감정 조절을 계속하다 보면 뇌 속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등)의 균형이 깨지고 기능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집중이 안 되고, 의욕이 떨어지고, 감정이 쉽게 가라앉는 거고요.
그래서 항우울제는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약이 아니라, 지쳐서 고장 난 뇌의 회로를 회복시키고 균형을 잡아주는 약이에요. 즉, 우울증은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뇌의 질환’이에요. 마치 당뇨가 인슐린 문제고, 고혈압이 혈압 조절 문제인 것처럼요.
이제야 알겠다. 의사 선생님이 힘주어 말하던 그 한마디의 진짜 의미를. ”당신이 잘못이 아닙니다. “였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냥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몇 자 끄적이는 포스트잇으로 살다가 쓸모를 마감하는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노력이 부족해서, 더 참지 못해서, 모든 이유를 자신에게 찾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사의 태도였다. 타인을 향해서는 관대했던 내가, 나에게는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잠시 멈췄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 병원에 오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정신과에서는 처음 진료를 받으러 온 날이 중요하거든요. “
” 우울이라는 게 제 삶을 따라다녔어요. 어렸을 때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경험했어요. 그런데 지금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고 힘든 적이 없었어요. “
”누구한테서요?“
”엄마요. “
생각보다 우울의 상태는 깊었지만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이상하게도경험은. 그제야 가벼웠다. 오랜만이었다. 내가 왜 아프고 힘든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은.그제야 마음이 한결 느슨해졌다.
우선이었다. 지금에서결혼 전 나는 늘 생존이 우선이었다.지금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우울의 아픔을 애도한다. 엄마의 폭력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언제든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공포였다. 그 시절의 나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몸을 얼려버리는 방법으로 살았다. 그땐 우울한 틈이 없었다.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부모와 다르게, 남편은 온전히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7년의 연애 동안 그의 따뜻함에 안심했고, 그게 사랑의 증거라 믿었다. 그런데 ‘ADHD’라는 별까지 함께 오면서 그 확신은 뼈가 녹아내리는 상실감으로 변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편도체는 말랑해질 틈이 없이 경직되고 빳빳하게 굳은 채, 쉴 새 없이 비상경보를 울렸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울은 불정책이 아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