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생'의 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나의 SNS 알고리즘에는 완성되지 않은, 미성숙한 모습까지도 내보일 용기를 가진 이들이 자주 보인다. 주로 새로운 취미나 챌린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이 과정을 자신의 SNS에 기록하고 남긴다. 이와 같은 콘텐츠들에서 눈여겨 볼 만한 점은 바로 멋들어진 결과물이 아닌,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자 시절부터의 시도를 전부 공유한다는 점이다.
내가 재학 중인 문예창작과에서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물론 다른 진로를 고민 중인 사람들도 많지만 학과 내 학생들의 대부분이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기에 교수님들도 작가 지망생이라는 키워드를 어렵지 않게 사용한다. 새내기 시절의 나는 이 작가 ‘지망생’이라는 키워드가 낯부끄럽게 느껴졌다. ‘내 글은 기성 작가는 물론 동기들과 비교했을 때도 한참 뒤떨어지는 거 같은데, 이런 내가 감히 작가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을 달아도 될까’와 같은 불안이었다. 작가면 작가고 아니면 아닌 거지 괜히 작가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에 숨어 스스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지망생이라는 건 결국 되기 위해 노력만 하고 있을 뿐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그저 내 이름 앞에 붙는 ‘그럴듯한’ 수식어 하나 만들고 싶어서, 이런 수식어라도 붙어야 성과 없는 내가 그나마 괜찮아질 거 같아서 그동안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준비생’의 과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과감하게 노출하는 이들이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소비자가 원하던 스토리텔러는 바로 준비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사람이라면, 소비자들은 그를 우러러볼 수는 있으나 그와 친밀감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숙한 시작과 도전을 처음부터 쭉 함께해 온 소비자일 경우 힘들어하는 시작을 보며 공감과 응원을, 점차 성장해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뿌듯해하는 과정을 같이 감각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자신 또한 시도해야겠다는 용기를 얻기도 하겠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제3자의 사람들 앞에서 나의 도전 과정을 그대로 노출하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도전에 실패하게 됐을 경우 나의 도전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두려움은 허상에 가깝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의 일에 그리 큰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갖더라도 이내 금방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니 준비하는 과정이든 준비생을 하기로 마음 먹은 내용이든 SNS에 올리고 싶다면 일단 올리자.
처음부터 대단하고 엄청난 결과물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처음부터 그런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는 문화 예술 프리랜서 준비생이다. 아직 내 이름을 내건 책·공연도 없고 유퀴즈에 출연해 유창하게 나의 예술관에 대해 떠들어댈 만큼의 달변가도 아니지만 문화 예술로 먹고살고 싶은 준비생이다. 이 준비생이란 수식어는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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