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두고 내 난자에 대해 생각한다
딱 보아도 코로나19 증상인데 승현은 그렇지 않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본인 때문에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게 순간 아찔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창 코로나19가 다시 극성을 부릴 때라 혹시 모르니 일적인 것 외엔 돌아다니지 말라는 나의 잔소리가 여러 차례 있었다. 승현은 태생적으로 집에 붙어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며 또 본인이 슈퍼면역자라 굳게 믿고 있었기에 내 말을 가볍게 건너뛰었다. 아내의 말을 들어 나쁠게 하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따로 노는 청개구리.
내가 자가진단키트 면봉을 들이밀자 승현은 어쩔 수 없이 콧구멍을 내놓았다. 첫 번째 테스트에서는 음성으로 나왔다. 승현은 거보라며 그냥 몸살일 뿐, 내일이면 다 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매운 코를 어쩔 줄 몰라했고 열이 펄펄 끓어 끙끙댔다. 아픈 승현을 간호하며 밤새 생각이 많았다. 내 아까운 난자들... 제발 코로나19가 아니기를. 다음 날 아침 다시 자가진단키트를 해보니 희미하게 양성이 나왔다. 승현은 그 길로 에라 모르겠다~ 마음 놓고 뻗은 채 실컷 아파했다.
누굴 탓하랴. 나는 난임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했고 예정되어 있던 인공수정 시술을 취소했다. 헛수고가 된 나의 노력들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술을 한 잔 마시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지나간 일에 미련두지 않는 것 또한 좋은 삶을 위한 선택이다.
나는 승현과 같이 먹고 같이 잤다. 언제 걸릴지 모르는 코로나19의 공포. 이참에 걸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일주일 내내 증상이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자가진단키트를 했지만 계속 음성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슈퍼면역자가 아닌가 으쓱했다. (하지만 1년 뒤에 제대로 코로나19와 마주했다.)
승현은 매우 아파했지만 미각은 잃지 않았다. 식탐이 있는 편도 아닌데 매 끼니 먹고 싶은 게 달라졌고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 먹고 싶은 걸 이야기했다. 먹을 땐 멀쩡하더니 먹고 나면 침대에 누워 종일 끙끙댔다. 나는 삼시 세 끼를 해 바치는 건 물론 체온계를 수시로 그의 귓구멍에 넣어 체크했고 열을 내리기 위해 약을 먹이고 아이스팩을 수건에 싸 몸에 대주었다. 시어머니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승현의 병시중을 들며 깨달았다. 아, 이건 찐사랑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한창 벚꽃이 만개했을 때였다. 격리 마지막 날, 밤 12시가 지나고 승현을 차에 태웠다. 선루프를 열고 여의도를 달렸다. 달콤한 봄공기, 흐드러진 벚꽃. 이렇게 로맨틱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우리의 1차 인공수정 시도와 1차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시련은 벚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경험해 보니 결혼이란 항시 굴곡진 그래프와 같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싶다가 순식간에 감정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것 또한 사랑 때문인 것을 그때는 잘 모르고, 나는 그토록 무거운 단어 이혼을 입에 올리고 만다. 두 번째로 시도하는 인공수정 시술을 무사히 마치고 난 그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