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6

김승현, 집을 사다

by 장정윤

아빠와 승현은 독하디 독한 중국술을 두 병은 마신 거 같다. 긴장한 탓인지 코스로 나오는 중국요리를 승현은 한 접시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빈속에 독한 술을 그리 부어댔는데도 승현은 제정신을 유지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아빠는 술도 잘 받아 마시고 대답도 시원시원하게 하는 승현이 예뻤던 거 같다. 아빠의 마지막 질문까지 승현은 무사히 통과했다.


"자네,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이렇게 묻진 않았지만 맥락은 같은 질문이었다)

"네! 결혼까지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다)


승현은 엄마, 아빠와 헤어진 후 완전히 취해버렸다.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 갈지자로 걷기 시작하더니 힘겹게 말했다.


"난 최선을 다했어. 이젠 몰라."


많이 긴장한 탓에 본인을 마음에 들어 하는 엄마와 아빠의 눈빛을 놓쳤나 보다. 승현도 이 만남을 앞두고 나만큼 마음고생을 했던 걸까. 혹시나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님이 미혼부란 이유로 자신을 내치실까 봐...


이때부터 우리의 결혼 준비는 급물살을 탔다.


시어머니인 백옥자 여사님은 지나가는 길에 나를 보러 내가 살던 오피스텔 앞에 오셨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마구 뛰었다. 내가 뛰어 오는 걸 보고 혹시나 민망해할까 봐 잠시 돌아계셨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어머님은 날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다. 얼마나 귀하게 여겨주시는지 난 지금껏 시댁에서 설거지 한 번 한 적 없다.


우리의 데이트 지역은 거진 연남동이었다. 내가 살던 오피스텔이 그 근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트럴 파크를 산책하고 있는데 승현은 갑자기 부동산에 들려보자고 했다. 부동산 여사장님은 승현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마침 나온 아파트가 있는데 그 집을 보여주겠다 하셔 따라나섰다. 방 세 개짜리에 화장실 한 칸인 노부부가 사는 아파트였다. 연트럴 파크 바로 옆에 자리한 공세원 아파트였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맞아주셨는데 본인 이름이 백옥자고, 남편은 광산 김 씨라며 승현을 반가워하셨다. 승현은 집을 보더니 나한테 어떠냐고 물었다. 속으로 이 아파트를 살 돈이 있다는 건가?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아드님께 영상통화를 걸어 승현을 보여주셨다. 신기한 게 그 집 아들이 승현과 동갑이었고 또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였다. 이 정도 인연이면 정말 이 집을 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실컷 집을 보여주신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제야 내가 눈에 보였던 모양이다.


"이 여자분은 누구셔?"

속이 뜨끔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소문나면 안 될 텐데...


"제 여자 친구예요. 결혼할 거라서 집 보러 다니는 거예요."

승현이 말했다. 이렇게 솔직하다고?


승현은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젊은 사람들은 알아봐도 아는 체하거나 말을 거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승현 가족의 찐팬 어르신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그들은 항상 말을 걸고 나의 존재를 물었다. 그럼 승현은 항상 여자 친구라 말했다. 한 번도 얼버무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게 난 감동이었다.


한 번은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MC가 여자 친구 있냐는 기습 질문을 했는데 당황하며 웃는 표정이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MC가 신동엽이었는데 승현이가 참 착하다며 숨기질 못한다 말했다. 난 그 부분이 좋아 보고 또 돌려봤다.


결국 그 집을 사진 못했다. 승현의 친구 소개로 성산동의 작은 한동짜리 아파트를 보았고 우리는 그 집에 반해버렸다. 승현은 주저 없이 그 집을 계약하려 했다. 그때 나의 머릿속을 스친 건 또 한 가지. 돈이 있나? 였다. 난 승현이 무리하는 게 싫었다. 우리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지만 언제 결혼할지 정한 것도 아니고 또 만난 지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 혹시나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 나는 결혼해서 산다면 전세도 괜찮고 월세도 괜찮아요. 나 때문이라면 무리하지 말아요."

"무슨 소리예요. 괜찮아요."

승현은 결국 어머님께 큰돈을 빌려 그 집을 샀다. 지금의 우리 집. 우리는 아직도 어머님께 돈을 갚고 있다.


양가 부모님, 집 문제까지 우린 순조로웠다. 다음은 승현의 딸 수빈을 만나는 일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미혼부 연예인과 결혼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