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히 알 수 없는 것
수빈이의 이야기는 항상 어렵다.
수빈이를 처음 본 건 시댁에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다. 어머님, 아버님 뒤에 숨어 수줍게 인사하던 수빈이는 티브이에서 봤던 것보다 마르고 얼굴이 작고 참 예뻤다. 어색하게 쭈뼛거리던 수빈이가 할머니한테 귓속말을 했다. 어머님은 수빈이가 언니 예쁘다고 한다며 말을 전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첫인상은 서로 예쁘다는 거였다. 수빈이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어머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들을 먹으면서도 내 정신은 수빈이가 있는 방 쪽으로 향해있었다. 아빠가 결혼하는 이 상황이 스무 살 수빈이한테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눈치가 보였던 것 같다.
어머님은 수빈이는 본인이 끝까지 책임질 것이니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식사를 하는 내내 거듭 말씀하셨다. 내가 승현과 결혼을 결심해가는 과정에 수빈이를 빼놓고 생각할 순 없었다. 책임은 당연히 승현과 나의 몫이라 생각했다. 아마 어머님은 내 눈치를 보고 그런 말들을 하신 것 같다.
어머님 인생에 수빈이가 없었다면 아마 무척 외로우셨을 거다. 아버님은 여러 가지 문제로 어머님을 속상하게 하셨고 아들 둘은 일찌감치 독립해 곁에 없었다. 잘 나가던 큰아들 승현이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헤맬 때 어머님도 죽고 싶었다고 하셨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내셨다 했다. 그러다 비로소 수빈이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하셨다 했다. 어머니 마음속 사랑의 강도는 알 수 없지만, 수빈이는 어머니가 인생을 사시는데 아들들보다 더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수빈이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했다. 난 살가운 사람도 아니기에 그냥 흘러가듯 두기로 했다. 감히 수빈의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무턱대고 다가갔다간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진 않을까. 그냥 어쩌다 만난 인생의 언니, 아빠의 아내, 그리고 수빈이 필요로 할 땐 엄마가 될 수 있는 존재. 그렇게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만난 지 3년 차인 우린 아직도 어색한 사이다.
8월 말 상견례를 하기로 했다. 5월에 만났으니 불과 3개월 만에 이 모든 일이 다 벌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그 짧은 시간 내에 결혼이라는 결론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승현은 나에게 상견례는 부모님만 가면 되는 거냐 물었다. 가족마다 다르겠지만 난 오빠가 결혼할 때 그 상견례에 참석했던 기억이 있어 가족 모두가 다 만나야 한다고 했다. 거기엔 당연히 수빈이도 포함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수빈이를 참 보고 싶어 하셨다. 정이 많은 엄마는 수빈이를 만나면 한 번 안아주고 싶다 하셨다.
그렇게 상견례 날이 오고, 올 줄 알았던 수빈이는 오지 않았다.
정현종 시 <방문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