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보다 승현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나는 결혼을 한다면 갖출 건 다 갖추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은 당연한 거고 호텔 예식장, 명품백, 명품 코트, 다이아반지, 진주 세트, 순금 쌍가락지 등 받을 건 다 받는 게 마땅한 건 줄 알았다. 내가 김치녀여서가 아니라 순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까불어대던 생각이다.
우린 결혼 날짜도 잡지 않은 채 예식장 투어에 나섰다. 웨딩플래너를 끼지 않았기 때문에 손수 몇 군데 전화를 걸어 방문 예약을 하고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처음 들린 곳은 새로 생긴 작은 호텔의 채플 형식 단독 예식장이었다. 5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고 우리가 마음에 들었던 점은 환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볼 것도 없다 생각하고 바로 그 예식장을 계약했다. 예식장이 비는 날이 1월 12일 일요일이라 그날로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웨딩사진도 따로 돈 들여 찍지 않았다. 나는 10만 원도 하지 않는 드레스를 입고, 승현은 가지고 있던 청바지에 재킷을 입고 연남동 길에서 찍었다. 승현의 친구가 찍어주었는데 명동칼국수 한 그릇으로 퉁쳤다. (나중에 승현에게 돈을 챙겨주라 했는데 챙겨주었는지 또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 사진으로 엽서처럼 사진이 박힌 청첩장을 만들었다. 승현의 아는 피디님 아내가 그래픽 디자이너라 그분께 부탁드렸고 인쇄비 정도만 받고 만들어주셨다.
우리는 사귄 지 얼마 안 돼서 커플링을 맞췄었다. 개당 25만 원짜리 은반지인데 우린 그걸 결혼반지로 생각하자 하고 따로 예물 반지도 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해도 결혼은 가능했다. 중요한 건 우리 둘 뿐이지 집이며 고급 예식장이며 예물 같은 건 하나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심플하게 하니 서로 마음 상하고 싸울 일도 없었다. 대신 신혼 분위기를 낸다며 로렉스니 까르띠에니 명품숍을 구경하긴 했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부모님들은 서운하셨을지 몰라도 우린 우리끼리 모든 것을 결정했다. 친구들한테 들으면 부모님들이 좌지우지하며 감정 소모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부모님은 마침 그 시기에 두 달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나셨기에 꼬박꼬박 보고만 받으실 수밖에 없었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셔 뭐라 나무라긴 하셨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를 존중해주셨다. 그건 시부모님도 마찬가지셨다. 시댁에 보내고 다시 반은 돌려받는다는 예단비도 생략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순탄한 결혼 준비였다.
승현은 나에게 다이아반지를 하나 사주겠다 했다. 나는 극구 사양했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다이아반지 있어도 끼고 다니지도 않는대요.”
“그래도 있는 거랑 없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정말 정말 괜찮은데 난.”
그때 진심은 나도 모르겠다. 고민할 틈도 없이 승현은 내 생일에 맞춰 떠난 여행에서 프러포즈와 함께 다이아반지를 선물했다.
프러포즈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숙소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차에 자기 핸드폰 충전기가 있는데 좀 갖다 달라는 거다. 너무 다급하게 말하길래 차키를 챙겨서 나가긴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연기가 너무 발연기 아닌가?’ 싶었다. 차에 뭔가가 있겠구나~ 싶은 프러포즈였다. 그래도 조금 눈물은 났다. 다이아반지보다 그걸 사주고 싶어 한 승현의 값진 마음에.
우리의 결혼 준비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궁상맞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결혼을 준비 한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아쉽거나 후회한 적도 없다. 다이아반지는 잘 모셔두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끼고 있다.
승현은 지금도 나에게 로렉스 시계를, 에르메스 가방을 사줄 날을 꿈꾼다. 아직까진 마음만으로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