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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Jun 29. 2022

나는 실패자입니다

실패한 아나운서 준비생의 이야기

이 글은 내가 아나운서에 실패했던 경험담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한다. 하지만, 꼭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게 아니더라도 취업이나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래 링크는 이 내용을 토대로 올린 콘텐츠이다.
https://youtu.be/v4Eqeo8xbhk





내가 아나운서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11년 전.

우연한 기회로 [MBC 신입사원]이라는 아나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한 게 계기였다.


(김대호·김초롱·오승훈 아나운서가 선발됐고, 장성규 아나운서가 떨어진 그 프로그램)


당시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어 남양주의 어느 산속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다.

(여름엔 어찌나 덥고, 겨울엔 또 어찌나 춥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다) 

암묵적 경제 가장이었던 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멍하니 출근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아나운서 공개채용 신입사원] 이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연령, 성별, 학력,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지원 가능합니다"


이런 설명에는 관심 없었다. 

단지, 오디션이 열리는 일산 MBC로 바람이나 쐬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쳇바퀴처럼 흐르는 현실에 일탈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명분이랄까.


오디션 당일.

난 그때 우리나라에 예쁘고 잘생긴 미남미녀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정해진 복장은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당시 영업일을 하고 있던 터라 정장만 입고 다녀서 정장을 입고 갔는데, 그곳에 모인 아나운서 준비생들을 보며 정장이라도 입고 오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전까지는 아나운서에 대해 몰랐고 합격을 바라는 마음으로 간 것도 아니라지만,  자리였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조의 차례가 되어 다른 지원자 몇 명과 함께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앞에는 당시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의 MC로 유명했던 홍은철 아나운서를 비롯해 몇몇 심사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한여름 태양만큼 뜨거운 조명과 나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매섭게 노려보는 카메라의 커다란 렌즈는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뉴스 원고를 받아 들었고, 읽으면 된다길래 정말 "읽기만" 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요동치는 심장은 건물을 빠져나와 일산 호수공원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진정할 줄 몰랐다. 

그때 알았다. 이 떨림이 내 생애 두 번째로 느끼는 '심장의 떨림'이라는 것을. 두려움의 떨림이 아닌 설렘의 떨림이었다. 


리고 1년 후, 나는 퇴사를 하고 아나운서 아카데미라는 곳을 찾아갔다.


전현무, 오상진, 배성재

처음엔 나도 이들처럼 유명한 아나운서가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당당하게 나의 성공스토리를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성공을 해본 적이 없기에 공채 아나운서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은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대신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왜냐. 내가 겪은 거니까.

세 가지로 간추려봤다.

현무 말고 3無


첫째, 목표가 없으면 된다.

유재석 씨는 한 방송에서 목표가 없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1년 동안 돈을 열심히 모아 등록한 아카데미였지만, 어떤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학창 시절 TV에서 본 손범수 아나운서를 동경해 그 뒤를 따라 예능 MC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전현무 아나운서나, 어릴 때부터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해 스포츠 캐스터를 꿈꿨다는 배성재 아나운서처럼 나는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목표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의 여러 장르 중 어느 하나를 특출 나게 준비한 게 없었다. 물론 다방면으로 준비하면서 기회를 엿봐도 되겠지만, 보다 확실한 목표가 있으면 준비 과정이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고 남자 준비생에겐 꼭 하나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스포츠 장르다. 특히 나 같은 체육학과 출신들에게는 더 강조를 한다. 다른 이들보다 출발선이 앞서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그분들이 놓친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체육을 전공했지만, 스포츠 경기에는 당최 관심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영문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영어를 다 잘하는 건 아닌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다른 남자 준비생들처럼 스포츠 캐스터 공부를 하긴 했지만, 도대체가 답답해서 그리 오래 하진 못했다.

여기서 나의 확률은 50%로 줄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내가 없으면 된다.

일찍이 스포츠 캐스터 준비는 포기했다. 그럼 이제 남은 장르는 뉴스, 생활정보, 기상, 리포팅, 라디오 등.

같은 반 동기 7명과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재밌게 연습했다. 전문대를 졸업해 학사 학위를 따로 취득한 나와는 다르게 학력도 좋고, 외모도 출중한 한마디로 지성과 미모를 두루 갖춘 7명의 여자들.

사촌 여동생들이 많아 어려서부터 여자들과 어울리는 게 더 익숙했던 터라 몰랐다. 아나운서라는 세계의 성비가 굉장히 불균형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남자 준비생이 스포츠 장르 준비를 포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고 다른 장르에서는 여자 준비생들에 비해 경쟁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나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뉴스를 챙겨보지도 않았고,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즐겨보지도 않았고, 그나마 라디오를 듣긴 했지만 그것도 고등학생 때 정지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스위트 뮤직박스]라는 프로그램만 들은 게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 장점이 뭔지, 이 세계가 얼마나 치열한 곳인지도 모른 채 연습만 하다 3개월의 수강 기간을 끝마쳤다. 수강 중 주어지는 자체 오디션 기회는 당연히 오지 않았다.

심화반 수강? 그럴 돈은 애초에 없었다.

이제 25%의 확률만 남았다.


셋째, 기한이 없으면 된다.

공채 아나운서들의 합격 후기를 보면 이런 문구가 보이곤 했다. 

"2년이나 3년 기한을 정해놓고 준비하는 게 필요해요."

나는 의아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준비하는데 어떻게 기한을 정해놓지? 그 시간이 지나면 좋아했던 게 사라지나?' 준비생들이 으레 그렇듯 아카데미 수료 후 동기들과 스터디를 꾸렸다. 하지만,


"난 그만할래. 아나운서 준비 안 할래."  


그렇게 하나둘 떠나고 스터디는 얼마 안 가 와해됐다. (10년이 지나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들 잘 지내고 있고 종종 연락하지만, 그땐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반 동기들도 하나둘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인터넷 카페에서 스터디를 구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년 전에는 스터디 구하는 것도 참 어려웠다. 같은 준비생들끼리 모이는 스터디를 지원하는데도 요구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증명사진 제출과 나이, 학력 기재는 기본이고 심지어 대외활동과 관련 경력사항도 적어야 했다. 내가 방송사를 지원하는 건지 스터디를 지원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지만, 아쉬운 건 내가 아니던가. 특출 나지 않은 외모, 이십 대 후반, 전문대 졸업, 경력 무. 그들의 기준으로 나를 탈락시키기엔 충분했다. 반대로 내가 스터디원을 모집하는 것 또한 잘될 리 없었다.

(지금은 그들이 왜 그랬지 이해되는 것도 같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일을 구해야 했고, 그때부터 나의 외로운 주경야독은 시작됐다.

그래도 아카데미 근처에 있어야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은행의 청원경찰 일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해본 경험이 없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한이 없다 보니 퇴근 후 피곤하면 연습은 내일로 미루기 일쑤였다. (3년이라는 시간이 그리도 빠르게 지나갈 줄이야.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일은 절대 안 할 것이다.) 기한을 정하라는 말이 그만큼 스스로 박차를 가하라는 뜻이었는지 너무 늦게 알았다.

지금이야 혼자 연습하더라도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서 불특정 다수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10년 전 나는 나의 장점이 뭔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박차를 가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확률은 0%를 찍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더 이상 공채를 지원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렇게 나의 공채 아나운서 준비는 확률 0%로 끝났다.




지금 이 글을 읽 당신.

당신도 이렇게 하면 확률 0%를 찍고 실패할 수 있다. 실패, 그거 어렵지 않더.






그래도 실패의 또 다른 말은 배움.

이 실패 속에서도 배운 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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