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敎師):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나의 가르침으로 삼는다
나는 아나운서에 실패했고, 100여 개의 이력서를 제출하는 동안 나를 찾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좌절은 기본이요, 가족 모두 잠든 방 안에서 숨죽여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인생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겨 도전했지만, 그 도전의 응답은 내 몫이 아니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저 사자성어는 언제부터인지 내 가슴에 새겨졌다. 그리고 되뇌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나운서에 도전한 게 몇 년째인지도 헷갈릴 때쯤 문득 돌아보니 그래도 배운 것들이 있더라.
아래 링크는 이 내용을 토대로 올린 콘텐츠이다.
https://youtu.be/qqH3kTc5rq8
하나, 목소리를 듣게 되다
"한턱 쏴!"
[뉴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의 추억을 안고 있는 이들이라면 기억할 대사. 래퍼이자 배우 양동근 씨의 유행어다. 고등학생 시절 양동근 씨의 인기는 대단했고, 나도 수많은 팬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배우의 말투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눌하고 느릿한 말투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던 나에게 좋은 무기가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말수가 적었던 난 말투마저 어눌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 적당히 선을 그었다.
그런 내가 나의 목소리와 말투를 제대로 마주한 건 아나운서 아카데미 첫 수업 때였다. 녹음기 속 그 목소리는 여태껏 들어왔던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때의 오글거림과 충격이란.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화면 속 나의 모습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운동치료사로도 일했던 난 몸을 컨트롤하는 건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얼굴 표정과 입술 그리고 혀는 내 통제 밖의 문제였다. 또렷한 발음을 만들고 싶었다. 탁 트인 목소리를 갖고 싶었다.
아카데미 수료 후 홀로 연습을 하며 볼펜도 물어보고, 양동이도 뒤집어써봤다. 집이 야산 속에 있었다 보니 산속으로 들어가 소리도 적잖이 질렀다. 유치원생이 된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어 읽어가며 내 혀와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고 또 느꼈다. 그렇게 하기를 수년, 몇 년 만에 찾아뵌 교수님의 한마디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무슨 일이니? 목소리가 어른이 됐어"
둘, 취향을 알게 되다
'나는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을까?'
체대를 나왔지만, 스포츠 경기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 매일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읽고 뉴스 대본 리딩 연습을 하고 시사상식을 공부하며 매일 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TV를 통해 유일하게 챙겨봤던 건 무한도전이 전부였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했다. 이런 게 아니다.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영역 내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을 찾기 위해 나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였다.
'길보드 차트'가 존재했던 시절.
초등학생인 나는 어김없이 친구와 함께 라디오 DJ의 노래 소개 멘트에 맞춰 오디오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좋아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가요와 팝송을 카세트테이프에 한 곡 한 곡 쌓듯이 녹음해 선물하던 때였다. 올드팝을 자주 들려주시던 아버지는 노래와 가수에 얽힌 이야기들도 들려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은 다음날 친구들과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제 고등학생.
학교에는 참 흥미가 없었다. 공부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아 중간만 했다. 하지만 매일 밤 자정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나는 달콤가족이 되었다. 정지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스위트 뮤직박스]를 들으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연을 들으며 공감했다. 사연을 보낼 용기까지는 없는 애청자였지만, 군대를 가기 전까지 거의 매일 밤 달콤가족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십 대가 된 후에도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종환의 뮤직스트리트], [백원경의 All That JAZZ]
그랬다. 나는 라디오를 좋아했다. 라디오 DJ를 하고 싶어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셋, 사람을 보게 되다
당시 라디오 DJ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연예인이 되거나 그 방송국의 직원인 아나운서가 되는 것.
'그럼 나는 왜 라디오 DJ를 하고 싶었던 걸까?'
라디오에는 음악이 있고, 사연이 있다. 그 예전, 아버지가 노래와 가수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것처럼 라디오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이 있었다. 그리고 DJ는 경청하고 공감한다.
나는 듣는 게 익숙했다. 말수가 적고 말하기를 꺼려 가족들 사이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듣는 쪽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겪어볼 수 있어 그랬던 것 같다. (배우도 비슷하지만, 배우는 상상의 캐릭터를 마주할 때도 있어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라디오 DJ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TV 다큐멘터리를 즐겨보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달 방식은 다르지만, 그곳에서도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는 건 같다고 본다. 이후로 난 사람들을 대할 때 더 경청하게 되었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나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나의 취향을 알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거쳐 온 대학 조교, 운동치료사, 전화상담원, 청원경찰, 스피치 강사, MC 모두가 다 그곳에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보는 법'을, '나'를 배웠다.
당신은 어떤 방법,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됐는지? 혹은 알아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