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마음의 준비 좀 하고요

말하기 전에 마음 좀 가다듬고

by 아나조

스물한 살, 군대에서 생존 본능이 발동되었다. 어긋나고 삐그덕 대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피했던 나였기에 생각처럼 잘 될 리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둘째고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말 건다고 달라지겠어...'


합리화였다. 겁이 나고 용기가 안 나는 걸 감추기 위해 변명을 하고 있었다. 쪼그라든 마음을 어르고 움츠러든 어깨를 펴야만 했다. 말을 걸어 보지도 않고 멈추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렇게 얼마 간의 '마음 준비'를 한 뒤 어렵게 입을 뗐지만, 무관심과 외면이 돌아올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어렵게 말을 한 건데 외면당하다니... 역시 안 돼'


두려움을 동반한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도하고, 외면당하는 과정의 반복이 이어졌다.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시간이 지나 말과 스피치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다 보니 내가 겪었던 일화처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피치 잘하는 법'만 검색해도 여러 방법이 나오는 마당에 그 방법들만 연습해도 될 텐데 굳이 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사람은 이성보다 직관이나 감정에 의해 행동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뇌의 구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성적 사고와 언어를 담당하는 대뇌피질보다 행동과 의사결정, 신뢰와 같은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더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뜻은 뇌가 작동할 때 대뇌피질보다 변연계가 먼저 작동한다는 것이고, 변연계가 먼저 자극을 받아야 언어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방법을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생존본능이 발동되니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이 명시한 '골든 서클'도 같은 맥락을 말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연결이 되면 이성적인 관계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기에 'What'이 아닌 'Why'부터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혹은 기업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닌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가치와 신념을 알아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하듯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를 한 번쯤은 겪은 적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내가 이 일을 대체 왜 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은 상태라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반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했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그렇기에 말을 하기 전에도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과 함께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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