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내가 너무 많이 괴롭혔지?
"남들이 어떻게 들을까 걱정돼요"
말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말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꼭 아니라도 한번쯤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여러 사람 앞에 섰을 때면 이런 생각은 짙어진다.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
'내가 우스꽝스러워 보이겠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마음이 우리를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축되게 만들기도 한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고,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은 다시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이 자기 검열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 정도면 잘했어'라는 자기만족과 '왜 이것밖에 못하지?'라는 자기비판이다. 지나친 자기만족도 경계해야겠지만, 문제는 '자기비판'에서 시작된다. 정확히는 '비판'이 '비하'가 됐을 때다.
자기의 생각이나 언행에 대하여 좋고 나쁘거나 옳고 그름을 스스로 따져 말하는 '자기비판'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나를 발전시키고 나아지게 만들 것이다. 아쉬웠던 부분을 돌아보며 다음엔 이렇게 해보겠다는 보완점을 찾고 적용해보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자기 비하는 보완점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끝없는 비하의 굴레에 갇히게 될 경우가 높다. 그리고 같은 경험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회피하게 만든다.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지인의 부탁으로 행사 MC를 맡게 되었다. 생애 첫 사회였다. 경험이 없어 걱정된다고 말하며 거절하려 했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행사이고 대본이 다 있으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단다. 거절을 잘 못하던 터라 계속된 부탁에 사회를 맡기로 했다. 지인의 말대로 규모도 크지 않았고 대본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본을 잘 읽기만 해도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잘하지 못했다.
관객 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압도되어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흐려져 대본이 보이지 않았다. 버벅거리기 일쑤였고 다음 순서가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말하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행사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 채 끝이 났고, 사회를 부탁한 지인을 보기가 민망하고 창피했다.
한동안 관객들의 눈빛이 떠오르면서 '분명 엄청 못하는 MC라고 생각했겠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연습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은 채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회의감에 아나운서 준비를 포기할까도 고민했다.
서투른 티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스스로 정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결과는 자기 비하로 이어졌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경험이 없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다.
MC로써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경험치가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청자는 화자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청자는 화자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화자가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청자는 스피치 경진 대회의 심사위원이 아닌 이상, 평가하면서 듣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가 말을 하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타인만 생각하고 자신에게는 인색해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인색해지니 자신의 노력마저 깎아내리고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그 괴롭힘이 자신을 가로막아 다시 시도해보지 않게 만든다. 시도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알고 문득 나에게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다. 내가 나인데 나에게 사과를 한다니. 아무리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라지만 막상 하려니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했다. 때로는 일단 하다 보면 이해가 되는 것도 있으니.
"못된 말해서 미안해"
"괴롭혀서 미안해"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내가 들을 수 있게 했다. 내 입으로 한 말을 내 귀로 들은 건데, 마치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것만 같았다. 마음 한 편이 몽글해지면서 없던 화마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사과를 하는 건 지는 것이 아니더라. 오히려 빠르고 진심 어린 사과는 자칫 악화될 수 있는 상황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안 그래도 각박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각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세상에서 굳이 내가 나를 괴롭히면서 나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만약 내가 나를 속박하고 괴롭힌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