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화, 화가 있나니
2012년, 모두가 지켜봤듯 미국 뉴욕이 공격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한순간에 벌어진 침공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흩어졌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 곳곳에서 반격이 시작되었고 지원군이 도착했다. 총공격을 펼치기 위해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대장이 지시를 내리던 그때, 배너 박사가 말했다.
2012년에 미국 뉴욕이 다시 한번 공격받았다는 첫 문장에 놀라거나 검색을 해본 이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위 내용은 영화 [어벤저스 1]의 한 장면이다. 만화 캐릭터이자 영화 속 인물인 배너 박사의 몸과 정신 안에는 헐크라는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위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헐크의 주된 에너지원은 화 그러니까 분노이다. 한마디로 배너 박사라는 인물은 언제나 화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배너 박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너무 나약한 존재라 밝은 것보다는 어두운 것에 쉬이 물들고 긍정보다는 부정을 더 빨리 받아들이고는 한다. 그게 속 편하니까. 이런 습성 탓에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마치 이긴 것 같으니까.
나도 한때 그랬다.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세상을 겪고 현실을 알아갈수록 내가 만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나의 더딘 성장에 잘 나가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또 화가 쌓여갔다. 여기서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하며 그 화를 내가 아닌 것들로 돌렸다. 다른 이들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세상을 헐뜯으며 합리화를 했다. 마치 나는 여전히 특별한 존재라는 울타리 안에서. ‘현재의 나'를 보려는 관점과 노력은 결여된 채 내가 아닌 모든 것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던 것이다.(호크아이도 아니면서)
결국 다스리지 못한 화는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스트레스는 여러 영향을 끼쳤는데, 먼저 생활 리듬이 깨졌다.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 보니 다음 날 하루 종일 피곤한 상태로 있게 된다. 그러면 매사가 귀찮아지며 쉽게 지치고 짜증을 내게 된다. 다음은 울타리에 갇혔다. 쉽게 지치고 매사가 귀찮아지니 한번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질 않게 된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꺼리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내가 친 울타리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무기력해졌다. 완벽해질 때까지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그럴싸한 변명과 합리화 뒤에 숨어 스스로 울타리에 갇힌 것도 모른 채, 인터넷과 sns 등 온라인을 통해 세상을 염탐할수록 오히려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남과 비교하게 되고 아닌 척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며 화를 쌓는 무한 루프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배너 박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헐크'라는 내면의 화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만 같은 현실에 좌절하여 결국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배너 박사 자신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도망쳐 새로운 곳으로 간다 해도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곳이 다시 '지금의 현실'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도망친 배너 박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여곡절 끝에 본인이 원래 있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럼 다시 도망쳤을까? 아니다. 배너 박사는 '헐크'라는 화를 다스리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완벽해질 수 없다. 대신 '완벽'을 목표로 열심히 하면 된다. 아니, 일단 해보는 것이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화를 다스리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디뎌 보는 것이다. 그랬을 때 누구보다 내가 나에게 온전한 지지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