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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Oct 21. 2022

뜻한 여행의 시작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들

세렌디피티 in 거제 #1

오후 3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기로 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철저히 내가 원해서 신청한 한 달 살기였다. 온라인 면접을 마치고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땐 지금껏 느낀 적 없는 새로운 성취감 같은 것이 일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참여해본 적 없다는 나의 답변에 쉬이 합격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 캐리어를 꾸려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잘 안 났다. 그래도 1년 전의 경험이 도움이 되어 수월하게 꾸릴 수 있었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들을 지나치며 여행 캐리어를 끌고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그 설렘이란. 9시 20분, 내가 오른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했다. 이제 4시간 30분 후면 난 거제에 있는다. 두 시간 즈음 달렸을까. 잠시 휴게소에 들르겠다는 기사님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휴게소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주전부리가 아닐까. 스스로 부여한 미션, 주어진 15분 안에 하나를 골라야 했다.



한 번 꽝손은 영원한 꽝손이란 말인가. 호두과자가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기지개를 켜고 다시 오른 버스는 두 시간여를 더 달려 거제에 도착했다.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해서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접수를 받아주는 간호사의 거제 억양에 내가 거제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투리가 이렇게 정겹게 들리다니. 혼자 거제에 도착한 나 자신에 내심 뿌듯했다.


검사결과지를 받아 들고 정해진 숙소로 향했다. 2시 40분쯤이었나. 활짝 열려 있는 숙소의 문을 지나 낯선 사람들의 신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안녕하세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고 어색한 인사가 오갔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동자들에는 낯선 나의 등장에 놀라움과 긴장, 경계, 반가움 등이 담겨있는 듯했다. 나도 속으로는 내심 긴장하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며 다시 한번 밝게 인사를 건넸다.


삼삼오오 모이는 사람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날 때 느껴지는 어색한 기류와 적당히 친절한 기운들이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인사를 나눴을까, 미리 정해져 있는 방으로 짐을 옮기고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될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photo by @like__san


photo by @like__san


주최한 거제시 공무원 분들과 주관하는 단체의 대표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예전 기수의 활동 영상을 시작으로 앞으로 펼쳐질 프로그램들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와 거제시 공무원 분들의 환영인사를 끝으로 오리엔테이션은 마무리가 되었다.


다시 숙소로 복귀한 우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거실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참 신기했다. 분명 두 시간 전 만난 사람들인데 어색함은 금세 사라져 있었고,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9명의 멤버들은 마치 스무고개라도 하는 듯 각자의 정보를 조금씩 숨겨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후 6시, 총괄 디렉터(이하 총디)의 등장과 함께 간략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총디의 브리핑을 듣고 나니 <거제 한 달 살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단순한 놀이와 여행이 아닌 지역을 알리고 외지인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들을 발굴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얼마 간의 브리핑이 끝나고 다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밖을 나섰다. 거제에서 먹는 첫 끼. 멤버들과 함께 먹는 첫 끼.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총디의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거제산 돌미역이 들어간 닭곰탕의 뜨끈하고 진한 국물은 긴장과 여독을 풀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직접 담근 밑반찬에서는 정성과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식사가 그렇듯 함께한 사람들이 좋아 그 맛이 배가 되었으리라.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귤을 주셨는데, 평소 과일을 잘 먹지 않던 내게 그 귤은 참 달콤했다. 귤이 달콤했던 걸까, 분위기가 달콤했던 걸까. 우리는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도 총디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알고 보니 총디는 나와 동갑이었다. 이곳저곳에 아는 지인도 많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충만한 그가 새삼 부러웠다. 나는 서울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던가.


숙소, 저녁식사, 호프집으로 이어진 대화의 장이 무르익고 있었다. 언니 오빠 누나 형 동생을 알게 되며 우리들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으레 그렇듯 잘 도착했는지 어떤지 물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


"엄마,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거제에서의 첫날은 뜻한 여행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과도 같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들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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