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한 달 살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정적을 지나쳐 발코니로 나와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잠자리는 바뀌었지만, 아침 루틴은 변함없었다.
<청년, 거제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다>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부동산&경제 강의였다. 10시에 시작되는 강의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숙소가 위치한 고현동을 둘러보기로 했다.
관광객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지만, 현지인들은 다 알아볼 것이다. 이른 시간 편안한 옷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내 또래는 없을 것이기에. 그러다 문득 이 친구를 만났다.
한껏 졸린 눈을 하고 가게 앞에 떡 하니 앉아있는 요 녀석.(나중에 멤버에게 들었는데 스탠더드 푸들이라는 종이었다.) 이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촬영하고 싶어 한참을 비추고 있었지만, 무심하게도 나를 쳐다봐주지 않았다. 그러다 발길을 옮기려 고개를 들었는데, 눈을 사로잡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남성 컷 7,000원"
거제에 내려오기 전 머리를 다듬고 왔지만, 거제에 있는 동안 한 번은 미용실을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가격을 발견한 것이다. 행운이었다. 푸들이 호객을 잘한 것일지도. 다행히 숙소 근처에 있는 곳이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미용실 방문은 나중을 기약하고 푸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강의장으로 이동했다.(끝까지 눈길 한 번 안 주는 시크한 요 녀석)
당연한 것이겠지만 시원시원한 거제 억양을 가진 강사님의 소개와 함께 강의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지금껏 부동산과 경제에는 큰 관심을 두며 살지 않았다. 정확히는 관심 밖이었다. 사람이 궁금했고 관계에 호기심을 가지며 살아왔다. 이런 내가 경제 강의를 들으려 앉아 있어야 한다니. 제발 졸지 말자고 다짐하며 앉아 있었다.
"여러분, 자유를 얻고 싶다면 우리는 '자'에서 '가'로 가야 해요."
'자'와 '가'의 의미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노동자와 자본가. 강사님의 지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은행에서 근무하던 A 씨는 친구 B의 부탁으로 그가 갖고 있던 땅을 담보로 대출을 진행했다. 그러나 개발이 어려운 산이었던 그 땅은 무용지물이었고, 설상가상 B는 대출을 갚지 못했다.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렵게 대출을 진행했던 A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땅을 헐값에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친구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빚까지 지게 된 A 씨는 상실했지만, 그 땅을 버려두지 않고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성으로 공을 들인 덕분이었을까. 해당 산으로 터널을 뚫게 되어 막대한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훈훈한 해피엔딩이었다.
이어진 강사님의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공'이라는 글자를 뒤집으면 '운'이 된다는 말, 그러니 운을 얻고 싶다면 먼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본가가 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절약부터 해야 하듯 내가 무엇을 얻거나 어느 단계까지 오르고 싶다면 인내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은 효과는 확실했다. 이후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기간이 끝나면 경제와 부동산에 보다 큰 관심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첫 째날 일정은 오전 강의가 끝이었다. 멤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고, 아직 이곳을 자세히 모르는 우리는 숙소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검색했다. 그러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 곳으로 찾아갔다. 두루치기 제육볶음의 푸짐한 양과 칼칼한 된장찌개, 따끈한 솥밥. 거기에 쌈 무한리필까지. 완벽한 한 상이었다.
든든한 점심도 먹었겠다. 오늘의 공식 일정도 끝났겠다. 나와 멤버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여유로운 오후를 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각자 무엇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근처 카페를 찾아 카페에서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숙소 근처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는 완벽한 오션뷰를 자랑하는 카페는 없었다. 그래도 꽤 괜찮아 보이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들고나가려던 찰나, 몇 명의 멤버가 자신들도 카페를 가기로 했다며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함께 가게 된 카페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고, 1층에서 주문을 마친 우리는 음료를 받아 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건물의 3층까지 사용하는 카페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마치 우리가 전세를 낸 것만 같았다.
노랗고 주황의 따뜻한 색감이 감도는 카페에 우리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앉아 음료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기를 얼마, 멤버들은 하나 둘 각자 원하는 테이블에 따로 자리를 잡았다. 다섯 명이 다섯 개의 테이블을 사용하다니. 그것도 어느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어느 카페를 갈까 검색하고 고민해 찾았다는 것도 공을 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넓은 카페를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운을 얻은 것이었을까.
짧아진 해에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다 함께 장을 본 것을 거실에서 나눠먹으며 2일 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