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산책, 시카고 다리 들던 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움직이는 다리의 도시, 시카고 리버워크 산책

by 안나킴

관광객으로 시카고에 와서 해야 하는 것 세 가지를 든다면,

1. 행콕 타워나 윌리스 타워 전망대 가기

2. 시카고 빈 조형물 앞에서 사진 찍기

3. 시카고 강 건축투어 크루즈 타기

이다.


그럼 시카고 사는 사람, 시카고언(Chicagon )으로서 시카고에서 꼭 해봐야 하는 건 뭘까.


바로 시카고 다리 수십 개가 열리는 날 시카고 리버워크 산책하기다.

시카고 강에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29개의 움직이는 다리가 있다. 이중 18개가 집중적으로 시카고 다운타운 루프 지역의 2마일(3.2킬로) 안 짧은 구간에 다닥다닥 밀집해 있다.


이 다리들은 배가 지나다닐 때마다 꽤나 자주 열린다. 의장대 사열하듯이 열리는 거대한 철제 다리들 밑으로 강을 따라 유유히 산책하는 경험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산책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카고의 다리는 늘 열렸지만, 2016년 다리 하부로 강을 따라 만든 멋진 산책길, 시카고 리버워크가 오픈한 이후로 더 멋져졌다. 거대한 철골 콘크리트 의장대가 도열해 나의 천천한 산책 속도에 맞춰 살아 움직이는 사열을 하다니, 세계 여느 곳에 가서도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나 한 살 때 막힌 머리뼈 천공까지 다시 열릴 것 같은 스펙터클한 감동이랄까.



촬영 겸 목소리 빌런은 남편님^^;;입니다.



우선 시카고 강과 다리에 대해서 알아보자.

시카고 강은 거대한 미시간 호와 미대륙을 세로로 길게 관통하는 미시시피 강을 연결해주는 미 물류 운송의 동맥이었다. 이로 인해 시카고란 조그만 동네가 미 중부 운송의 중심으로 이렇게 거대한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현재 커다란 물류 수송의 기능은 시카고 강 남쪽의 카루멧(Calumet) 강과 일리노이 강이 수행 중이다. 시카고 강은 강 남쪽에 요트 창고가 두 군데 있는지라, 부자들의 멋진 럭셔리 요트들이 미시간 호에 유람하러 나가는 주 통로로 쓰인다


19세기 중반쯤부터 지어진 시카고 강의 다리들은 스윙(swing) 브리지 형태였다.

이는 동력을 최소화한 다리의 형태지만, 가운데에 기둥이 있는지라 거대한 화물선이 들어오질 못했다.

MovableBridge_swing.gif 스윙 브리지, 선개교


이에 20세기 초반부터 팔처럼 양쪽으로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배스큘(bascule) 브리지, 즉 도개교 형태로 다시 건설되었다. 현재 시카고 강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형태의 다리다.

MovableBridge_draw (1).gif 배스큘 브리지, 도개교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움직이는 다리의 도시답게, 시카고 강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움직이는 다리가 진짜로 다 작동 중이다. 시카고나 일리노이 주정부보다 더 상위인 연방 정부의 법이 시카고 강의 다리를 최소한 연 1회라도 들어 올리고 작동시키라고 하는지라서.



MovableBridge_lift.gif 리프트 브리지, 승개교

위 리프트 브리지 형태는 시카고 차이나 타운 근처에 있는데, 암트랙 기차가 지나간다.


MovableBridge_roll.gif 싱글 베스큘 브리지, 일엽 도개교

위 싱글 베스큘 브리지 형태도 시카고 강 상류나 하류에 남아 있다.


이외 시카고에 특화된 다리 형태들이 남아있어 참 다양한 종류의 다리를 한눈에 보기에도 좋다.



(나 이런 거 너무 좋아하는 소싯적 공대녀... 졸업 설계에서 어쩌다보니 다리 설계를 했다는. 쿨럭...)




사진 오른쪽에 그 유명한 옥수수 빌딩, 그 옆 검은 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IBM 빌딩

시카고 강에서는 4~6월 봄, 그리고 9~11월 가을의 수요일 토요일 오전에 다리를 들고 요트들이 지나간다. 볼거리 이벤트로 여는 것이 아닌, 엄연히 통행이 목적이다. 봄에는 미시간 호로 요트들이 나가고, 가을에는 유람을 다 마치고 요트 창고로 들어가는 일이다.

마치 우리 동네에 기차 건널목에 서 있는 양,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땡땡땡 차단기가 내려간다. 다리 위 차와 보행인의 통행이 금지되는 시간은 다리 하나당 10분 정도다. 순수히 그 육중한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시간은 단 1분이다. 그렇게 시카고 다운타운 루프 지역의 18개 다리를 순차적으로 들어 올리는데 3~ 4시간이 소요된다.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상당히 빈번히, 장시간 일어나는 일인지라 시카고 시민들이 짜증 안 낼까 싶다. 차단기 앞에서 쳐다본 사람들의 표정은 참 평온하다. 우리네 기찻길 차단기 앞에서 동동 구르는 그 초초한 얼굴이 없다. 출근길에 장애인 휠체어가 버스에 올라타도 아무도 안 쳐다보고 그 5~10분을 느긋히 기다려주는 미국인의 평온한 얼굴 그대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 일, 혹은 한 발에 천만 원이 넘는다는 불꽃축제는 돈 많은 세계 각국 어디에서나 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 년이 넘은 철제 콘크리트 다리들 수십 개가 나란히 도열해 육중한 날개를 들어 올리고 요트들이 행진할 때, 함께 강가에서 유유히 산책하는 경험은 여기 시카고뿐이다.


...역사는 흉내 낼 수 없어서다.


사실 서울 사람이 은근 남산타워나 여의도 불꽃축제 안 가본다. 이 시카고 다리 열릴 때 그 아래 산책하기는 시카고언도 잘 안 해 본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카고에 산다면 언젠간 꼭 해봐야 하는 일순위. 그리고 시카고를 방문하는 사람도 꼭 스케줄 맞춰 봐야 하는 장관이다. 다리 열리는 봄가을에 맞춰 오면 좋다. 이 리버워크 강가에는 스낵 가게도, 커피숍도, 맥주집도 심지어 와이너리 야외 좌석까지 너무 잘해놔서, 그냥 잘 즐기면 된다.


가끔 보수 중이라 한쪽만 열리는 다리도 있다. 저 다리 속 기술자들이 경찰들과 계속 다음 다리로 이동하며 무전기로 다리 오픈을 감독한다.



마지막으로, 엔지니어링에 정말 관심 있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다리 열리는 날 시카고 리버 뮤지엄에 가야 한다. 시카고 강에 움직이는 다리들을 지을 때 조종 시설이 있는 탑들을 그 귀퉁이에 같이 지었다. 한 다리 양쪽에 탑이 2개면 둘 다 조종 시설, 4개면 2개는 장식, 2개는 조종 시설이다.


평소에 리글리 빌딩이나 시카고 트리뷴 건물에 가려면 지나는 두세블(DuSable) 다리에 붙어있는 한 탑이 시카고 리버 뮤지엄이다. 수십번 지나던 길인데, 늘 거지가 앉아 구걸을 하는지라 그가 막고 있는 뒷문의 건물이 박물관인줄 몰랐다. 그 안은 라푼젤 탑만큼 공간이 좁은지라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날에는 미리 예약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사진 윗부분의 counter weight라고 쓴 부분이 시소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는 추 부분이다. 이 노란 톱니바퀴들이 들어 올린다.


이 무거운 철근콘크리트 도개교가 어떻게 들어 올려지는지,

그 메커니즘은 다리 구조물 속에서 생생히 목격 가능하다.

백 년 전 만들어진 이 다리들은 양 끝에 거대한 추가 있고 동력으로 기울어지는 원리다.

그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면서 추가 기울어지는 걸 어두컴컴한 속 안에서 트트트특 하는 굉음과 함께 감상하면 된다.


지상의 다리 앞 차단봉 아래서 다리가 다시 닫히기를 기다리는 보행자와 눈도 마주치고 그러는 거다.

저 땅속에 줄지어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지 하는 의아한 시선을 만끽하면서.







*시카고 다리들이 열리는 일정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chicagoloopbridges.com/schedule.html


다리 시뮬레이션 이미지:

By Y_tambe - Y_tambe's file,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08717 By Y_tambe - Y_tambe's file,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565689 By Y_tambe - Y_tambe's file,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08471


참고싸이트

http://chicagoloopbrid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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