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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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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0. 2019

나의 엄마

나는 잘 있어요.

내일이면 벌써 만 15년이 되는 날이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 또한 그 시간만큼의 나이를 더해 35살이 되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해결하며 지탱해온

가볍지 않았던 젊은 시절 삶 속에서

엄마는 아주 천천히 내 머리와 마음에서 멀어졌지만

또 종종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꿈속에 찾아오곤 했다.


엄마의 부재가 너무나도 컸기에

서로 말도 못 한 채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을

가족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48살 이후로 늙지 않는 나의 엄마는

많이 고왔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점점 얼굴이 흐릿해지고

목소리, 체온, 눈빛, 체취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진을 찾아보면 '맞아. 우리 엄마네.' 상기하지만

뒤돌아서면 다시금 눈에서 아스라 져간다.

잘 담아지지 않는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잃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엄마의 나이 때를 살게 되면서 

엄마가 했던 역할들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엄마가 아닌 '그녀'를 종종 만나게 된다.

나의 엄마가 새롭게 기억되고 이해되고 반가우면서 아프기도 하다.

 

나와 엄마,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이고, 아내, 엄마로 살았을 그녀를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힘겹다.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속이 상하고,

매몰차게 이기적일 수도 없는 따뜻한 심성이 벅차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생각하기엔 지금 당장의 현실이 버겁고

또 그저 받아들이기엔 꿈이 많은 여성이다.


그녀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제라도 나의 엄마로만 여기지 않을 수 있어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 과정이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결국 그것이 15년간 끝없이 나를 괴롭혀왔던 질문에 대한

적당한 답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엄마. 안녕?

나는 잘 있어요.

아빠랑 언니도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한테 다시 인사를 건네는 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데.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가 될까 싶어 마지막에 이 글을 남겨둡니다.


나는 이제 서른다섯 살 이에요.

좋은 사람을 만나 6년 전에 결혼을 했어요.

호주 골드코스트라는 낯선 곳에서 둘이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 사람에게 아주 가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곤 해요.


밥을 잘 안 먹는 나를 뭐라도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김에 하나하나 밥과 다른 반찬을 말아 아침을 준비하던 일상과


무슨 일이 있어도

빳빳하게 다림질되어있던 새하얀 교복


선생님 칸 옆에 엄마의 코멘트도 매일 함께 적혀있던

친구들과는 달랐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매번 놀랄지 만큼 많았던

거실의 많은 책들과 그 책들을 읽던 엄마 아빠의 모습


친구들은 하나밖에 없는 도시락이

언제나 나는 2교시용 간식 도시락까지 두 개였던 것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작은 일상에 대한 기억들을

차곡차곡 나의 깊은 곳에 켜켜이 쌓아줘서

나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요.




나도 이제 엄마가 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한때는 그런 내용의 책들만 한참을 찾아 읽기도 했었어요.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엄마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게 될 자신이 없어서 그만 읽기로 했어요.


대신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려고요.

내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고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하고

덜 미안해하고, 덜 무거워하는 엄마 말이에요.


막상 진짜 엄마가 되어보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목표하고 있어요.

내 옆에 사람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도록 항상 도와줄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사실 아직도 엄마에게 묻지 못한 질문들이 몇 가지 있어요.

그렇지만 난 끝까지 묻지 않을 거예요.


그저 나는 잘 있다고

이렇게 시간에 흘러 살고 있다고

덕분에 엄마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 번쯤은 말해주고 싶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또 오랜 안녕이에요.


나의 엄마.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긴 시간 괴롭혀 온 어려운 숙제 중에 하나였다.


떠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힘겨울 때가 있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고

술에 취해 서럽게 통곡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적당히 이쯤에서 나를 위해 일단은 숙제를 제출하고 싶었다.

어차피 정답도 채점자도 없고 언제든 원할 때 수정이 가능한 숙제이니까.


어쨌든 한 번 제출했으니 당분간은 좀 잊고 지내도록 해야겠다.


- 우리 엄마가 아닌 '나의 엄마'라고 표현한 것은

다른 느낌과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자매님에 대한 존중이다. 

그녀의 것을 나와 동일하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 




손, 발이 차다.

따뜻한 샤워를 하러 가야겠다.



6. 17. 201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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