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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0. 2019

우리의 시작

비 오는 날 밤의 제주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남편을 만난 건 29살 10월의 제주에서였다.


나는 뉴욕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 커플의 한국 결혼식 이후 

그들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제주여행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낯선이 들을 편안해하지 않는 성격과 

30살을 코앞에 둔 복잡한 심경의 상태였던 당시의 나는 

오빠에게 함께 여행은 조금 무리일 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동행인들이 새언니의 친구들이라 내가 본인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설득당했다. 

멀리 사는 오빠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향한 것과 달리 

다행히도 세상 행복한 신혼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랑스러워 미소를 숨길 수가 없던 기억이 있다.


비가 오던 날 밤이었다.

제주에 멀리 사느라 서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새 언니의 초등학교 동창분이 우리를 초대해주셨다.

맛있는 흑돼지와 술을 배불리 먹고 한껏 흥이 오른 우리는 

그분이 운영하시는 게스트하우스 1층의 카페에서 2차를 즐겼고

옆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성 두 명에게 

너무 왁자지껄 노는 게 미안하여 합석을 권했다.


그들은 원래 가려고 했던 숙소의 예약이 잘못되어

비를 쫄딱 맞으며 한참을 헤매다 가장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왔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이 지금  6년째 같이 살고 있는 나의 남편이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선하고 밝은 얼굴의 그는 경계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행은 피곤해서 잠을 청하러 들어갔는데

홀로 남아 영어로 대화하는 우리 무리 속에 거부감 없이 합석하여

같이 사진을 찍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놀았다.

우리 일행과 휴대폰을 돌려가며 다 함께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오빠 일행에게는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이었던지라 다들 기분 좋게 취해있었고

새벽 1시에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자는 약간의 취기 오른 돌발행동에도 우리 무리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 날 새벽

그는 나를 제주 함덕 바다에 빠뜨렸다.

긴 청바지를 입고 있던 생리 주간

찝찝함을 이루 말할 수 없던 상황에서도

그 낯선 사람에게 불쾌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 평소의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왔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오빠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


오빠 일행은 서울로 올라가고

나는 제주로 내려온 사촌동생과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틀쯤 뒤였나 보다.

버스로 이동 중 페이스북 메신저 알람이 울려 확인해 보니 

며칠 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안부를 물어오는 것이었다.

지금 어디인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등

꽤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인 것 마냥

밑도 끝도 없이 뻔뻔하게 사소한 것들을 물어오는 그가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 너무나도 달라 매우 새로웠다.


그의 질문에 채 답하기도 전에

내가 묻지도 않았던 자기 이야기를 30초에 하나씩 메신저에 실어 보낼 때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황당한 사람이네.’ 하며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 대화가 이틀쯤 이어졌었나 보다.


그가 나의 휴대폰 번호를 물어왔다.

나는 망설였고 

고민하다 

끝내 답하지 못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지만 시작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고

단지 페이스북 친구로 족하다 싶었다.

마음이 꽤나 무거웠다.


그때의 나는 30살을 3달 앞둔 29살의 회사원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었고 ‘결혼’이라는 큰 숙제를 풀지 못한 채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힘겹게 통과하는 중이었다.


그때의 그는 나보다 세 살 어린 26살의 백수였다.

대구에 살고 있었고 군에서 막 제대를 했다.

한 달 후 호주, 뉴질랜드로 각각 1년씩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서

2년 뒤에 한국에 돌아온다고 했다.


마음과 머리가 계속해서 서로 다른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너무 다른 우리의 상황으로 인해 눈 앞에 마지막 장면이 쉽게 그려졌다.

내 주변 사람들의 우려도 이미 완성된 문장으로 귀에서 맴돌았다.

결국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상처 받게될까 걱정되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그의 존재를 말하지 못한 채 시시껄렁한 내용의 메시지만 계속 주고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연락처를 원했다.


마음이 꽤나 무거워졌던 어느 날

혼자 여의도 한강공원을 한참 걷다가

가장 친한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나 사실은 제주에서 누굴 좀 만나왔어. 나 이 사람이 좀 좋아.

근데 나보다 3살 어리고 백수인데 다음 달에 호주에 간대. 어뜩해? 나 미친것 같아. 하하.”


“음. 이게 20대의 마지막 연애가 될 수도 있어. 어차피 떠날 사람이면 되려 정리도 쉽게 될 거야. 

마음 가는 대로 해봐.”


그녀와의 통화 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동생이야말로  나를 지지해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녀에게 골라 전화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자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레 연인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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