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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0. 2019

주말 연인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단 4주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내가 다니던 회사는 서울 무교동에 있었다. 

서울 중심가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는 것을 위안삼아 버티던 그 시절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이겠거니 하고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에게 카톡이 왔다.


“애인. 퇴근합시다. 집에 같이 가요.”


‘무슨 소리지. 회사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앞에서 다른 동료들이 보면 어떻게 하지. 아, 어뜩해. 야근해야 하는데.

아 뭐야 뭐야. 대구사람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야.’


순간의 걱정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입꼬리는 실룩거리며 업무 수첩을 덮고 컴퓨터 모니터를 꺼버렸다.


잦은 연락으로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지만

제주에서 스친 이후로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두 번째 만남, 첫 번째 공식 데이트 거기다가 서프라이즈!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뛰쳐나가 보니 

건물 숲 속 넥타이와 구두를 장착한 회사원들 사이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한 청년이 

스타벅스 커피 두 잔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애인!!”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원피스, 트렌치코트, 9cm 하이힐과 검정 서류 가방을 든 나는 너무나도 그곳과 닮아있었고 

그 날 우리의 차림새가 현재 각자의 삶이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서둘러 우리 집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무교동, 시청, 서울역, 용산을 거쳐 한강대교를 건넜다.

두어 시간쯤 걷는 동안 우리는 계속 깔깔 거리며 웃어댔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는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 좀 많이 달랐다.

하이힐보다 운동화를 신은 내가 좋다고 했고

화장한 얼굴보다 맨 얼굴이 예쁘다고 했다.

원피스를 입은 것보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내가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





내가 예뻐 보이려고 준비하면 큰 리액션이 없었다.

여태껏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 다른 취향의 사람을 만난 듯한데

왜인지 나는 점점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연인이 되었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번의 주말뿐이었다.

그가 서울을 두 번 올라왔고

한 번은 대구와 경주

마지막 주말은 부산을 함께 여행을 했다.


3번째 데이트 후에 그는 나에게 결혼을 청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더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알겠다고 했다. 


애틋하기만 한 4번의 주말은 야속하리만치 빨리 지나가버렸다.

그는 호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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