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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0. 2019

장거리 연애

보이스톡과 함께하는 저녁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그가 떠난 후

일상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피곤에 찌든 얼굴로 지하철에 몸을 실어 출근을 했다.

직장인 생활은 점점 즐거움이 바래가고 있었고

업무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피곤함이 매일 축적되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도 예전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일 같았다.

인간관계의 소중함 보다는 허무함과 냉랭함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한 가지 변한 게 있었다면

잠들기 전 그와의 보이스톡 시간이었다.

여느 연인들처럼 우리는 거의 매일 잠들기 전 항상 통화를 했다.

가을을 넘어 겨울을 맞이하고 30살이 되어버린 그 무렵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소소한 일과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했다.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서 그와 통화를 할 때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찾아오곤 했다.


그는 그 낯선 곳에서 타일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건물을 짓는 현장에서 타일을 나르고, 글루를 게고, 기술자분들을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  다른 도시로 출근을 해서 저녁이 되어 돌아왔다.

가난했던 그 시절 그에게는 라면과 시리얼이 주식이었다.


그럼에도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되려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 좋아했고

어느 날에는 ‘오늘은 모래랑 시멘트랑 섞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며

나중에 우리 집을 지을 때 다 유용하게 쓰일 기술들이라고 기뻐했다.


아무도 없는 먼 타지에서 

하나하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대견했고 안쓰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고 씩씩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점점 회사생활이 힘겨워졌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그렇지만 다시금 취업시장에 뛰어들 자신은 없었고

안정된 월급과 소속을 포기할 용기 또한 없었다.


그가 떠난 지 4개월쯤 되었나 보다.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겨움이 최고조에 달 했을 때

나는 꺼이꺼이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서럽게 울어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상사에게 왜 그리 화가 났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회사가 많이 싫었던 것 같다. 

벗어나고 싶지만 두렵고 막막해서 그랬던 걸까.


타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그에게 

괜스레 장거리 연애의 고달픔만 나열해가며

할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에게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감정이 쉽사리 제어되지 않았고

30살 어른이었지만 내 마음조차 스스로 달랠 줄 모르는 헛 어른이었다.


한참을 전화기 너머로 내 목소리를 듣던 그는

‘애인. 여기로 와요. 우리 여기에서 같이 살아요.’

‘애인. 빵 좋아하잖아요. 내가 빵 많이 사줄게요.’라고 했다.


와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된다고.

다 괜찮다고. 세상을 가져도 된다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물론 그를 너무 좋아했지만

그땐 그의 그런 말조차 멋져 보이고픈 호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함께 살자고.


6년 차 부부가 된 지금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는 정말 사소한 것조차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정말로 나는

3개월 뒤, 30살 5월에

그와 호주를 만나러 2주 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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