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Jun 20. 2019

달콤했던 2주 간의 여행

골드코스트, 시드니, 멜버른 여행의 기록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도망가고 싶었다.


보여줄 것도 사실 없었지만

보여주기 식 삶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속은 점점 곪아갔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유약했고

설사 내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들

그것이 나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도 

머리가 점점 커질수록 알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오랜 시간 이 방식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위태로움을 느꼈다.




행운이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막상 혼자 행동으로 옮기기는 겁이 나던 나에게

낯선 곳에서 앞으로 함께 인생을 살아보자는 사람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비겁했다.


나 혼자의 도망이 아니라

뜨겁고 로맨틱한 사랑의 도피처럼 포장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는 그 말을 먼저 꺼내 준 그에게 힘든 탓을 돌릴 수도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준 바다같이 넓은 마음의 그에게

나는 그때도 지금도 너무나 고마울 뿐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살만한지 아닌지를 확인해야겠기에

그리고 그가 너무 보고 싶었기에 호주에 2주 동안 지내보기로 했다.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경험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때 꽤나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고

야근과 토요일 근무를 밥먹듯이 했었다.

최대한 싫은 내색 안 하고 묵묵히 일을 하다가 업무보고 말미에 

아주 가볍게, 휴가 승인을 안 해주면 천하의 나쁜 상사가 될 것 같이

보내주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식으로,

호주에 결혼할 사람이 있고 2주간 휴가를 다녀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의 일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본부장까지 구두로 휴가 승인을 받았었나. 

아무튼 직장인에게 2주 휴가 승인 자체는 꽤 큰 모험이었다.

어찌 됐건 승인해줘서 다녀왔던 거겠지, 호주에.


나는 그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골드코스트는 호주 3번째 도시 브리즈번(Brisbane)과 차로 1시간 거리에 맞닿아있다.

마치 서울-인천공항 같이 국제선의 경우 대부분 브리즈번 공항을 이용하게 되고

인천-브리즈번 대한항공 직항이 매주 4회 운행된다.

먼 비행이 걱정인 지인들에게 나는 종종 '밤 비행이라 비행기 타서 밥 먹고, 술 먹고, 영화 보고, 자다가, 일어나서, 밥 먹으면 도착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9시간 내내 뒤척거리며 잠을 설치다가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6개월 만에 나를 만난다고 보타이를 메고 나온 

귀여운 남자 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 당시 차가 없던 남편과 나는

공항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골드코스트로 내려왔다.


내가 처음 만난 골드코스트

그때도 지금과 같은 가을-겨울의 기간이었다.

성수기가 끝나버린 휴양지에는 한적함이 가득했고

어디를 가던지 조용하고 깨끗했다.

공기가 맑았고, 사람들은 친절했고, 그가 있었다.

모든 게 마냥 좋았다.


그 당시 여유가 많이 없던 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밥을 자주 사기도 하고

그가 사는 햄버거도 감사하게 먹었다.


모든 게 중요하지 않았다.

4번의 데이트

3번째 데이트 후 결혼약속

6개월간의 장거리 연애

이 모든 시간을 함께 견뎌내며

우리는 결국 이 낯선 골드코스트에 함께 있었다.


그저 이런 우리의 인연에 신기하고 감탄할 뿐이었다.

골드코스트(Gold Coast)는 말 그대로 황금빛 해변이다. 57km에 달하는 모래사장 해안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있다. 호주인(Aussie)에게 최대 휴양도시이며 서핑을 하기 좋은 스팟이 많다. 서핑 용품 브랜드인 Billabong이 시작된 곳이며, 세계적인 서핑대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관광도시의 특성상 시즌에 따라 도시의 분위기가 상이하다. 대표지로는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는 막상 서퍼들을 찾기 쉽지 않다. 큰 파도가 오는 서퍼스 비치는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Surfer's Hell'이라는 별명이 있다.-, 벌리 헤드(Burleigh Head), 쿨랑가타(Coolangatta) 등이 있다.


3일 정도 골드코스트를 구경하고 

우리는 함께 멜버른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호주의 유럽이라고 일컬어지는 멜버른은 우선 

오래된 건축물들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빨간 트램과 야라강, 고즈넉한 분위기와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덕스러운 멜버른의 날씨


한국에서의 현실

그리고 

호주 외국인 노동자로의 현실로부터 각각 벗어난 우리는


길거리 버스킹 악사의 연주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나눠 마시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끊임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나누었다.


그저 모든게 좋았다.

그럼에도 하나 꼽으라면 당연히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일 것이다. 절벽 해안 도로는 멜버른의 절경 중 하나이다. 사진 속 바위는 그중 으뜸인 12사도(12 Apostles Lookout)이다. 생각보다 긴 여정이라 다른 일정을 함께 할 수 없다. 사진으로는 직접 봤을 때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할 수 없다.


비행기로 시드니에 넘어갔다.

시드니는 너무나도 큰 대도시이고

우리는 계속 시티에만 며칠 머물러 있었기에

시드니를 가보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그래도 행운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

Vivid Sydney 기간에 방문해서 다양한 볼거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나의 웻지 감자를 눈앞에서 훔쳐가던 기가 세던 바다갈매기.

그 아이를 정말로 잊을 수 없던 여행이었다.


여행은 금방 끝났다.

골드코스트로 돌아와 함께 밥을 해 먹고 

소소히 해야 할 일들을 해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 퉁퉁거렸고

그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계속해서 태워댔다.

또다시 헤어져서 지내야 하는 게 어떤 것인지 서로 알기에

우리는 그 마지막 날이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말을 하다 보면 눈물이 또르륵 떨어지거나

갑자기 주룩주룩 흐르기도 했다.


그저 더 아껴주고 애틋해하면 좋았을 것을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그때는

모든 게 너무나 서툴러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생채기도 꽤나 많이 냈었던 것 같다.




출국날 아침,

그가 무슨 멋진 말을 했는지 그런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2주 라는 짧은 시간동안 호주가 어떤지 아는건 불가능이었다.

그 곳이 어떤 곳이건 상관없이

나의 자리는 그의 옆이라는 확신만이 강해졌다.


최대한 빨리 그의 옆으로 돌아와야겠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나의 결정을 이야기할지

또 내가 여기 살면 우리 가족은 어찌 해야 될지에 대한 걱정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출근길의 발걸음이 달랐다.

마음속으로 퇴사를 결정했기에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다만 집을 들어갈 때의 말 걸음은 수천 배 무거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거리 연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