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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0. 2019

퇴사, 결혼 그리고 해외이주

힘겨운 이별의 시간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더 이상의 고민은 없었다.


마음을 먹고 나자 퇴사는 너무나도 쉬웠다.

2009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만으로 5년,

25살에서 30살 나의 가장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던 시절을 함께했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직장과는 인수인계서와 사직서로 간단히 정리되었다.


소속감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기뻤다.

나의 퇴사 이유가 결혼과 해외이주라는 것을 들은 몇몇들은

걱정을 가장한 채 못난이 어른처럼 쉽사리 조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듯 내가 먼저 구하지 않았음에도 들려오는 일방적인 잔소리였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아, 이곳을 떠나길 정말 잘했어.'라고 확신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밖에서 함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귀한 인연들을 그곳에서 얻은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해외이주는 내 방의 물건을 정리하고

호주에서 필요한 짐들을 그의 주소지로 발송하면 끝이었다.

영주권을 받은 후 해외로 거주하러 나가는 게 아닌지라 정확히 이민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고 일주일 정도 후에 승인결과를 통보받았다.

딱히 장애물이라고 생각할 것이 없었다.


결혼 계획도 어렵지 않았다.

우선은 우리끼리 호주에서 할 계획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의 가족이었다.

아빠와 언니에게 각각 호주에 가서 살 거라고 이야기했다.

결혼식은 일 년쯤 뒤에 다시 한국에 나와서 하고 돌아갈 것이라 했다.

사실 이야기가 아니고 통보였다.


내가 부모라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거다.

만나본 적도 없는 사위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결혼식 하는 것도 먼저 못 보고

저 멀리 딸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라니.


아빠는 화내지 않으셨지만 아무런 대답 역시 없으셨다.


언니는 알겠다고 했지만 역시 찬성하지는 않았다.

그 후 몇 주 뒤에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같이 마실 때였다.

"네가 간다면 말리지 않아. 근데 엄마가 있었으면 반대했을 거야."라고 말하는데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라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렸다.


엄마의 존재가 너무 오랜만에 표출되어서도 있지만

부, 모는 어찌 보면 그 역할과 성향이 너무 달라서

아빠 혼자 외로이 반대도 못하고 씁쓸하게 날 보낼 준비를 하는 걸까.

갑자기 효녀가 된 듯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한국으로 인사를 나올 수 없는 그는 아빠와 통화로 대신했고

나는 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혼자 씩씩하게 대구에 갔다.


너무 마음이 무거웠었는지

출국하기 이틀 전 심한 위경련으로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한참을 누워있으며 울었다.


그래도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이렇게 강인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이 상황을 겪여 내면서까지 대체 왜 그렇게 가족품을 떠나 

그에게 혹은 호주로 가고 싶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출국날,

아빠는 공항에 나오지 않기로 했다.

언니가 분명 공항에 같이 나간다고 했는데

일어나서 샤워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워서 짜증을 냈다.

조금 다퉜고 툴툴거리며 혼자 공항버스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고 있는데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미안해. 공항에 가서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었어.

인사하는 게 너무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널 그렇게 보내서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조심히 가."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미안하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혼자 두고 가서 정말 미안하다고. 잘 살겠다고. 

힘겨운 이별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하늘이 밝아왔고 나는 호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와 다시 재회했다.


제주에서 10월 1일에 만났던 우리

또 다시 돌아온 10월, 

골드코스트에서 정말로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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