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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Aug 23. 2018

여름처럼 자라는 아이

두 번의 여름과 무수히 많은 날들의 조카 육아

일 년 반이 흘렀다.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서른아홉을 바라보고 있고, 아이들은 지금 차례로 여덟 살, 여섯 살이다. 둘 다 사내 아이다. 이 아이들과 함께 살기 전에도 한 주 걸러 한 번씩, 아니 세 주에 두 번 꼴로는 우리 집에 와서 주말을 보내고 갔고, 공휴일이나 연휴에는 여지없이 내 눈 앞에 이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가정은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적어도 3년여 전부터 아이들은 그것을 목도하며 지냈다. 많이 잡아도 고작 다섯 살, 세 살 언저리였다. 작은 아이가 두 돌을 갓 지나면서부터 였을 것이다. 어떻게든 줍고 기워서라도 봉합시켜보고자 했던 어른들의 간절한 마음이 가 닿지 못한 채로 부대끼며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내게로 온 것이다. 아니지. 아이들이 자신들을 품고 돌봐줄 수 있는 어른들이 있는 집으로 왔는데, 그때 마침 그 집에 내가 있었던 것일 수도. 그렇다면 그건 운명이라 할 수 있을까. 필연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가자면 한도 없이 깊고 무거워지니 일단 그런 생각은 접어두기로 한다.

서른일곱이던 당시의 나는 어정쩡하게 회사에 다니며 십여 년째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고, 결혼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있었으며, 낼모레 마흔이었는데도 부모 슬하를 떠나지 못한 채였다. 그때 가까운 가족들은 모두를 위해서 내가 이 집을 떠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외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평생 두고 겪지 않아야 했을 일들을 핏빛이 가시기도 전에 몽땅 겪은 직후였고, 내가 느끼기에 무엇인가를 맹렬하게 갈망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살아있었고, 너무나 뜨거웠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온전하게 느껴진 절박함은 그 이전에는 경험해 본 바가 없었다. 그 투명하고 온전한 본능적인 움직임을 나는 거스를 수가 없었고, 느껴지는 대로 행동했다. 그건 맘 먹고 내린 큰 결정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선후관계나 인과관계를 따질 만큼의 여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의 반응은 아이들만큼이나 본능적이고 또 즉각적이었다. 그 무렵 감정적인 태도와 행동은 언제나 합리적인 생각 보다 앞섰다. 합리적이고 나발이고 생각이란 것을 당최 할 수 있는 정신도 없었다. 지금에서야 그때 그러했던 게 아닐까, 되짚어보고 있을 뿐. 당시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전시 상황에 비견할 만큼 비상 상태였고 너나 할 것 없이 심리적으로도 몹시 불안정했다. 엄마는 일자리를 버릴 수밖에 없었고, 일흔이 훌쩍 넘은 아부지는 더 열심히 일 해야만 했다.

내가 느끼기에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오롯한 어떤 존재를 전력을 다해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돌보아줄, 지켜줄, 생명줄이 되어줄 존재. 그 존재는 온전히 하나면 되었고, 그게 바로 나였다. 아이들은 나의 조카, 나는 아이들의 고모다.


지금 시작한 이 글은 아마도 충격과 상처 속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싱글 고모의 조카 육아기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친조부모인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큰 조력자이다. 아이들이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라는 동안 나도 많은 것을 다시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바라보고 갈 것인가, 하는 것들 말이다.


2018년 8월 19일 일요일. 광나루 한강공원.


기억할만한 여름이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지낸 후의 모든 날들과 계절들이 그랬다.


올해 사 신은 크록스 고무신으로 여름을 났다. 이 한 켤레로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갯벌로 강으로.


그리고 지금 내 곁에서 여름처럼 자라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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