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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ug 02. 2022

필승! 신고합니다

나의 군대 이야기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자매부대'가 있었다.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군부대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1학년 때부터 위문품과 위문편지를 보냈고, 5학년이 되면 전교생이 강원도에 있는 자매부대를 방문했다. 자매부대 일일 입대는 우리 학교의 특별한 전통으로, 선생님과 선배들에게서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중에서도 자매부대에 가면 탱크를 타볼 수 있다는 말이 우리를 제일 설레게 했다. 우리는 1학년 때부터 얼른 5학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편지 쓰는 걸 좋아하던 나는 검은 줄이 죽죽 그어진 규격 편지지 한 장을 꽉 채워가며 정성껏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군인 아저씨의 답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 잘 지낸다는 안부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 그리고 보내준 선물 고맙게 받았다는 이야기가 편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멀리서 날아온 아저씨의 답장을 책상 서랍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곤 했다.


자매부대 방문은 5월이었으므로, 5학년이 되자마자 사열식과 위문 공연의 맹연습이 시작되었다. 5월이 다가올수록 연습 시간은 점점 늘어나, 떠나기 며칠 전부터는 거의 하루 종일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공연은 합창, 댄스, 단막극 등 다채로웠다. 선생님의 지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가 자발적으로 연습하고 테마 선정이나 구성에도 참여했다. 누군가를 위해 힘을 모아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은 우리를 한층 성장시켰을 것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사열식 연습이다. 운동회 매스게임이나 학예회 연습은 해봤어도 군대 사열식 연습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었다. 정말 군대에 온 듯 운동장에 줄을 정확히 맞춰 서야 했다. 줄이 조금이라도 안 맞거나 교실을 벗어난 들뜸에 잠시 옆 친구랑 장난이라도 치면 선생님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사열식 연습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소대장이었던 나는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사열식 연습을 하다, 총이 너무 무거워 바지가 내려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총과 함께 자꾸만 흘러내리는 체육복 바지 때문에 진땀이 났다.

'받들어 총'이나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신고합니다' 등의 말도 그때 처음 들어 보았다. 우렁찬 목소리로 외쳐야 하는 말들이 열두 살 나에겐 생소하기만 했다.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혼나 가며 배운 것도 그때였다.




드디어 4년을 기다린 자매부대 방문 날이 되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부대에 도착했다. 마중 나와준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를 무척 반가워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만 빼면,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오빠들처럼 친근했다.

자세한 일정은 다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식판에 먹던 밥이 너무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훗날 취사병이었던 남편과 군대 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매부대가 떠올랐다. 그리고 남편한테 뽐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 군대 갔다 온 여자야!"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위문 공연도 성공적으로 끝나고, 그날 밤 모두 내무반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내무반의 딱딱한 침상은 집에서 덮고 자던 이부자리에 비하면 몹시 불편했지만, 불침번을 서던 아저씨들이 우리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두운 내무반 낯선 잠자리에서 따뜻하게 내 이불을 고쳐 덮어주던 아저씨들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다음날 아침 사열식을 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 운동장보다 훨씬 넓은 연병장에서 우리는 실수 없이 잘 해냈다. 그리고 드디어 탱크를 탔다. 탱크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는 아저씨들의 보호를 받으며 높은 탱크 위를 마음껏 즐겼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주인공 잭이 외쳤던 "I'm the king of the world!" 순간이었다.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이벤트도 있었다. 각개전투와 태권도 시범을 TV 아닌 실제로 보니 '!'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제일 기억에 남는  사격 자세로 엎드린 군인 아저씨 위로 탱크가 지나가도 무사히 살아남아 적을 무찌르는 장면이었다.  어떤 영웅보다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에겐 슈퍼 듀퍼(super-duper) 히어로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려고 줄을 서 있었다. 그때 멀리서 한 군인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나의 위문편지를 받았던 아저씨였다. 휴가 후 복귀한 아저씨는 우리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나를 보려고 달려와 주었다. 나와 아저씨는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듯 반갑게 만났다. 버스에 오른 나는 아저씨와의 짧은 만남이 아쉬워 눈물이 났다. 창 밖으로 아저씨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돌아온 후에도 아저씨에게 계속 위문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저씨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아저씨가 행복한 제대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자매부대에서 우리와 만났던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를 기억할까. 자신의 병영 생활이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멋진 모습으로 남게 될 거라는 걸 상상할 수 있었을까.

어릴 때의 군인 아저씨는 내가 자라면서 또래 친구가 되었다가 지금은 아들 또래가 되었다.

친구의 아들들이 입대를 하고 훈련소에서 부쳐온 아들의 옷을 안고 울었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자매부대 아저씨들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군부대 안에서 본 다정하고 우리를 많이 예뻐해 줬던 아저씨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이제 그 아저씨들이 아들 또래가 된 걸 생각하면 새삼 세월이 느껴진다.

슬픈 분단과 휴전의 현실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도 우리의 많은 아들들이 입대를 한다.

그들의 젊은 날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해야겠다.

지금도 생각나는 위문편지에 자주 썼던 글귀 '우리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이제 우리 아들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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