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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11. 2022

수영 특급

여름은 물놀이의 계절이다. 해마다 수영장, 바닷가, 워터파크가 유혹의 손짓을 한다.

내가 사는 이곳도 5월 말부터 커뮤니티 센터 풀장과 아파트 단지 내 풀장들이 모두 오픈했다. 창 너머 건너편 아파트 단지 풀장에 요즘 매일같이 사람들이 붐비는 게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 열심히 노력해도 끝내 익히지 못한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자전거 타기다.

대학입시가 끝나고 친구 C랑 여의도 광장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 그때까지도 자전거를 못 타던 내게 C는 자신이 가르쳐 주겠다며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우리는 자전거를 한 대 빌려 드넓은 광장으로 나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C는 결국 자전거 교습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한데, 네 균형 감각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도 자전거를 못 탄다. 친구 말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수영이다.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가 나를 목욕시키려다 그만두신 적이 있다고 한다. 물에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우는 나에게 오 남매를 키우신 할머니조차 두 손 두 발 다 드셨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유난히 물이 무서웠다. 이모들이랑 수영장에 놀러 가면 물에 들어가는 것보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김밥이나 수박, 참외를 먹는 게 더 좋았다. 튜브 없이는 절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쩌다 코에 물이라도 들어가면 너무 괴로워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는 매년 여름이면 1주일에 한 번씩 수영장에 가서 수영 수업을 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까지 수영 등급시험을 봐야 했다. 헤엄쳐 간 거리에 따라 수영 급수를 받았다. 아마 1급에서 5급까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수영 수업이 너무 괴로워 여름이 오는 게 싫을 정도였다. 수영장에 가는 날이면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신나는데 나만 아침부터 우울 모드가 되곤 했다. 6학년이 될 때까지 기초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물속에서 얼음이 되곤 했다. 얼굴을 물에 담가야 하는데 나로서는 기절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물속에서 눈을 뜨라니...

한 번은 짓궂은 남자애 몇 명이 놀리는 바람에 오기가 나서 '에이 모르겠다' 하고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배가 뽈록해질 때까지 물을 먹고 수영 선생님한테 구조되었다. 내가 또 물에 뛰어들까 봐 그 뒤로는 아무도 나를 놀리지 않았지만, 나는 속이 상했다. 나 자신이 참 바보 같다고 느꼈다. 이 두려움을 꼭 극복하리라 다짐도 해 보았다. 그러나 이 핑계 저 핑계로 수영 수업을 빠지거나, 내 차례가 되면 슬쩍 줄에서 이탈하기도 하면서 한 해 두 해 여름을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을 코 앞에 둔 6학년이 되었다. 수영 급수를 딸 수 있는 시간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최소한 4, 5급은 따는데 나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방과 후 특별활동에 수영반이 있었다. '해 보는 거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결심한 나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댄스반을 포기하고 수영반에 들어갔다.

굳게 결심하니 집중력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끌려가는 수업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자부심이 더욱 열심히 배우는 동기가 되었다. 나는 무서운 걸 꾹 참고 발을 바닥에서 떼어 물에 몸을 맡겨 보았다. 배를 받쳐주던 선생님의 손이 슬쩍 사라짐을 느꼈지만 벌떡 일어서지 않으니 몸이 둥둥 떴다. 세상에, 내 몸이 물에 뜨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무서웠던 물속에서 눈도 뜨게 되었다. 물속 바닥에서 발을 떼고 눈도 떴는데 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할렐루야!

그러나 환희의 송가는 거기까지였다. 그다음 순서인 자유형에서 바로 난관에 부딪쳤다. 남들은 다 되는 팔 젓기와 숨 쉬기가 나만 안 되는 것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내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몸은 자꾸만 꼬르륵꼬르륵 가라앉았다. 나중에는 언제 팔을 젓고 언제 고개를 내밀어야 하는지 리듬감을 완전히 놓친 채 허우적거렸다. 그렇다고 숨을 참은 채로 10미터, 20미터를 헤엄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10미터는 고사하고 단 5미터라도 자유형으로 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결국 나는 수영 급수를 따지 못하고 무급으로 졸업을 했다. 졸업식에서 받은 수영 급수장엔 '0'이란 숫자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전교에서 나 하나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웃는 그들을 보며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자존심이 많이 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괜찮아. 그래도 물에 뜨는 게 어디야. 많이 발전했잖아. 넌 수영 무급이 아니라 수영 특급이야, 특급! 전교에서 너 하나니까.'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물과 별로 친하진 않다. 그러나 스스로 수영반에 들어가 배워보려고 노력했던 일, 잘 되진 않았지만 나 자신을 위로하며 힘내던 일은 잊히지 않는다.

살면서 내가 미워지려 할 때 '수영 특급'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리고 내가 다시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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